그곳에 가고 싶다-연천
 가파른 길을 따라 힘겹게 정상에 오르자 드넓은 철원평야가 펼쳐진다. 넓디 넓은 녹색 평원엔 소리없이 벼가 익어가고, 군락을 이룬 집들이 드문드문 눈에 띈다. 평화롭기 그지 없는 저 곳이 한국전쟁 당시 그토록 많은 생명이 숨져간 격전지였던가. 현실을 잊고 평화로운 사색에 빠려드는 것도 잠시, 인근 군부대에서 사격연습을 하는 지 메아리치는 총성이 분단의 현실을 일깨운다.
 
 3번 국도를 따라가면 의정부와 양주, 동두천, 연천을 거쳐 철원에 이르게 된다. 미군부대가 주둔해 있는 곳인데다, 휴전선이 맞닿은 곳이라 녹색 군용차량과 자주 마주하게 되는 3번 국도. 휴전선이 없다면 조금 더 달려 금강산까지 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동두천을 벗어나 연천에 들어서면 처음 반기는 곳이 ‘전곡읍’. 북에서 흘러온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 서해로 가는 길목이 바로 이 곳 ‘전곡’이다. 강변 관광지로 연천에서 제일 번화하다는 곳인데, 쉬고 싶은 마음을 잠시 접고 고대산(高臺山)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보자. 그렇다고 과속은 금물, 시원스레 뚫린 길 곳곳엔 ‘무인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물론 사고예방이 우선이다.
 연천군청을 지나면서부터는 좁은 시골길. 농촌 마을 풍경이 평화롭고 특히 신망리역, 대광리역을 지날때면 역사를 낀 마을 모습이 옛 정취를 더 해준다. 하지만 지나는 길 곳곳에 눈에 띠는 부대 표지판이 군사도시임을 잊지 않게 하고 있다.
 철원 쪽으로 더 차를 몰고 가면 연천의 마지막 마을 대광리와 마주하게 된다. 이 곳에 위치한 ‘신탄리역’. 남한의 최북단역으로 열차는 이 역에서 더 이상 북으로 가지 못한다. 3번 국도 강원도 철원군과의 경계지점에 남아있는 끊어진 채 녹슬어 있는 철교가 예전 경원선 열차가 이 역을 지나 철원역을 거쳐 원산까지 달렸음을 증명할 뿐이다.
 탄리역에 잠시 차를 세운다. 북으로 조금 더 간 철길은 녹이 슨 채 들풀만이 무성했다. 금새 철길은 끊어지고, 떡하니 버티고서 ‘철마는 달리고 싶다’며 철도종단점을 알리는 안내판은 원산까지 ‘131.7㎞’라고 말하고 있었다. ‘철마는 글씨를 몰라서 저길 하나 못 뚫고 못 가는 지’ 신탄리역사에 걸린 싯구가 더 달리고 싶은 철마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철길 건널목을 지나 고대산 입구로 향했다. 번잡한 3번 국도를 피하기 위해 열차로 올 경우에는 걸어서 10분이면 고대산 입구까지 닿을 수 있다. 경원선은 예전 서울 용산과 원산을 잇는 중요한 교통수단. 지금은 의정부역에서 출발하는데, 신탄리역까지 1천400원에 1시간20여분이면 도착한다. 바깥 풍경도 운치를 더해주는 데다, 고대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막걸리 한 잔이라도 걸치기 위해선 오히려 승용차보단 열차가 더 좋을 듯하다.
 고대산은 해발 832m의 그리 높지 않은 산. 예전에는 ‘큰고래’라 했다. 큰고래는 이 계곡이 온돌방 구들장 밑으로 불길과 연기가 빠져나가는 고랑인 ‘방고래’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땔감을 뜻하는 ‘신탄’(薪炭)이란 마을 이름이 말해주 듯 이 지역에선 참숯이 유명했다. 실제로 입구에서 바라본 고대산은 계곡이 깊고 숲이 울창했다.
 고대산에 오르는 길은 세갈레. 칼바위를 거쳐 정상까지 가는 2코스로 올라, 표범폭포로 이어지는 3코스나, 작은골로 향하는 1코스로 내려오는 것이 안내원이 전해준 정석이다. 왕복 4∼5시간.
 안내원의 말대로 2코스로 향했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지는데, 쉬엄쉬엄 칼바위까지 오르는 길목 중간중간 뒤돌아 보는 산아래 풍경이 일품. 시원스레 펼쳐진 철원평야 일부와 오밀조밀 신탄리역을 둘러싼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고대산 정상에 오르면, 넓게 펼쳐진 철원평야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옆 한국전쟁 때 최대의 격전지였던 백마고지, 그리고 노동당사가 있는 철원군이 녹색평원으로 물들어 있다.
 산 밑으로 내려오는 3코스는 2코스와 달리 산아래 풍경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숲길이 울창하다. 1급수가 흐르는 표범폭포(일명 매바위폭포)는 20m에 이르는 물길이 시원하기도 하려니와 폭포 옆 절벽 또한 감탄을 불러내기에 손색이 없다.
 차디찬 계곡물에 지친 발을 담궈 땀을 식히고 매표소까지 내려오면 끝. 허기진 배는 고대산 입구와 신탄리역 주변 음식점에서 달래보는데, 오리구이와 보리밥, 막국수, 순두부가 유명하다. 콩비지의 일종이라는 ‘콩탕’ 또한 이 지역의 특색있는 먹을거리다. /강상준·김주희기자 kimju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