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도움 받으며 지내온 선배가 있다. 작은 교회에서 일하는 목사님인데 아주 재주가 많은 분이다. 80년대 초중반에 빈민촌에서 함께 일했는데 그 후로 이분은 위장취업자로 변신해 한동안 공장에서 일했다. 당시 즐겨 불리던 운동권 가요 중에는 이분이 필명으로 작곡한 노래들이 많다. 족히 100여곡은 넘을 것으로 생각된다. 몇 해전 교회에 복귀한 뒤로 빈민촌에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동화를 한편 썼는데 지금 초등학교 국어(읽기)교과서에 실려 아이들의 교재로 읽히고 있다. 뛰어난 재주도 재주려니와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살아온 범상치 않은 삶으로 해서 이분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늘 존경을 받는다. 이분에게 도의회와의 인연은 봉변으로 시작됐다. 몇 해전 자신이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한 단체에서 사무실을 개소하면서 지역인사들을 초청했다. 행사 시작 전에 도의원 한 분을 소개받고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그때 도의원이 악수하던 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했다는 말은 이렇다. “이런 사람이 도대체 도의원이 뭐하는 사람인지 알기나 하겠어?” 이후로 이분이 갖는 도의회에 대한 인식은 ‘모욕’이었다.
 
지난 봄이던가, 도의회는 상임위별로 일제히 해외시찰에 나섰다. 당시 우리는 도의원들의 해외 순방 일정과 내용에 문제를 제기했다. 일정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도의원들을 모시고 나갔던 산하단체의 한 실무자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다른 경우는 몰라도 자기팀은 열심히 일하고 돌아왔다는 주장이었다. 방문목적과 순방장소, 일정 등에 이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라도 그만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믿고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흐른 지난 7월, 당시 이들이 순방했던 러시아에서 한 통의 전화제보가 접수됐다. 도의원들의 여행안내를 가끔씩 맡았다는 이 여성은 도의원들이 해외출장 현지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이 여성이 알리고 싶은 내용은 누구누구 의원이 지나는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는 추태를 부렸다는 등 주로 의원들의 품위를 뭉개는 내용들이다. 러시아라는 낯선 땅에서 일하는 조국의 한 젊은 여성이 도의원들에 대해 갖는 느낌은 한 마디로 ‘부끄러움’이었다.
 
올 들어 도의회는 후반기 집행부를 새롭게 구성했다. 의장, 부의장과 상임위원장들을 다시 선출하고, 다수당인 한나라당 대표의원도 새로 선출했다. 지도부가 새로 출범하는 만큼 의욕도 많고 기대도 많다. 새 지도부는 정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정책개발 기능을 강화하는 등의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후반기 도의회의 새 집행부가 보여주는 출발은 적잖이 실망스럽다. 시작이 무섭게 멀쩡한 관용차를 놔두고 최고급 승용차를 새로 구입하고, 의장실과 부의장실의 뜯어고친다고 소란이다. 의원들의 친선을 도모한다며 30여명 의원들이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아 백두산 등정에 나선다는 소식도 들린다. 젊은이들이 일할 곳이 없어 난리라는데, 공장문을 닫아거는 중소기업들이 속출하는데, 단전, 단수에 남모르는 울음을 삼키는 저소득층이 날로 늘어만간다는데, 정치에서는 때가 중요하다고 그렇게들 되뇌이더니 왜 하필이면 지금인지 모르겠다. 이럴 때 시민사회가 갖는 도의회에 대한 반응은 ‘민망함’이다.
 
긍정적인 많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느끼는 이런 모욕, 이런 부끄러움, 이런 민망함이 모두 도의회가 쌓아온 관록(?)이다. 할 일이 많아 보인다. 보좌관제도 만들어야지, 대의기관으로서의 권위도 세워야 한다. 개인별로는 멀리보고 큰 정치도 도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먼저 낮아졌으면 좋겠다. 도의원도 좀 겸손해지고, 도의회도 좀 낮아졌으면 한다. 반복되는 구태에서 손떼고, 대우해달라고 거만 떨지 말고, 의회는 신성한 곳이라고 악쓰지 말고, 더 낮아졌으면 한다. 낮아짐으로써 도의회의 실추된 권위를 높이 세우고, 시민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 도의회가 먼저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지방정치의 마땅한 영역을 회복하고, 지역사회에 건강한 사기와 기풍을 진작하는 주체로 우뚝 서는 지방의회를 보고싶다. 먼저 과감한 자기 개혁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