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 제대로 보기
 김혜수의 노출 연기로 세간의 관심을 크게 야기시켰던 ‘얼굴없는 미녀’(감독 김인식)가 개봉 첫 주 박스 오피스에서 상대적으로 초라한 성적으로 올리는데 그쳤다고 한다.
 영화 전문잡지 ‘필름 2.0’(www.film2.co.kr)에 따르면 서울 6만3천여명, 전국 누계는 24만여명을 불러 모으며 ‘겨우’ 박스 오피스 5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김인식 감독의 주목할 만한 데뷔작 ‘로드 무비’가 개봉(2002년 10월18일) 첫 주 박스 오피스 9위를 마크하며 고작 서울 7천8백여명 전국 1만8천여명 밖에 동원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물론 이는 10배 전후의 괄목할 만한 성장세다. 따라서 감독의 입장에서는 딱히 흥행 실패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김혜수로서는 낙담을 넘어 참담해 한다고 한들 무리가 아닐 성싶다. 노출 여부에 상관없이 그녀는 20년 가까운 연기 생활에서 일생일대의 변신을 꾀하며,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헌신적 열연을 펼쳤기에 하는 말이다. 판단컨대, 그녀는 ‘해피 엔드’의 전도연이나 ‘바람난 가족’의 문소리에 버금갈 뿐 아니라, 어느 모로는 능가하는 열연을 선보였다. 비단 노출에서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면에서 말이다. 그 점은 김혜수가 분한 극중 캐릭터 지수가 흔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상적 내지 정상적(?) 인물이 아니라 ‘경계선 성격 장애’라는 정신분열증 직전의 신경증을 앓고 있는 이상 캐릭터였다는 데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단언컨대 김혜수는 ‘해피 엔드’의 불륜녀 보라나 ‘바람난 가족’의 당찬 주부 호정에게 부재하는, 그 어떤 아우라를 지닌 이중적, 아니 다중적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야말로 치명적 매력을 발산시키며 압도적으로. 고백컨대 이번 영화의 김혜수만큼 날 압도하는 우리 여배우를 목격한 적이 없다. 상기 전도연이나 문소리도, ‘정사’의 이미숙도, ‘결혼의 미친 짓이다‘의 엄정화도, 심지어 ‘오아시스’의 문소리도 그러지 못했다. 그 시선을 남자 배우까지 확장시킨다면, ‘복수는 나의 것’의 송강호나 ‘파이란’과 ‘올드 보이’의 최민식에 필적한다고 할까. (물론 작품 전체의 수준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작지 않은 편차를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그런데도 이 땅의 숱한 매체들은 그 연기를 제대로 평하는 데는 관심 없고 오로지 그녀가 얼마나 벗었는가에만 온갖 관심을 쏟았다. 영화사에서 그런 보도를 원했는지 여부는 장담할 순 없지만. 대중 관객이 아무리 천박하고 선정적이라 한들 실제로 그런 정도일 거라고 까지 생각했던 걸까, 심지어 어떤 스포츠 일간지는 “김혜수 보인다 보여”라는 천박한, 너무나도 천박한 제목을 일면 톱으로 장식하기까지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혹 ‘얼굴없는 미녀’의 상대적 흥행 부진의 일등 공신은 위의 선정적 매체들의 선정적 기사들이 아닐까, 하는. 음란과는 거리가 먼 노출마저도 극도로 음란하게 써댄 싸구려 기사들 말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아니라고 강변들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