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옥 한나라당 국회의원
지난 7월말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나라당 대표단(단장·정형근 의원) 일원으로 보스톤을 방문했다. 초선 국회의원으로서 200년 의회민주주의 역사와 함께 세계 민주주의의 꽃으로 평가받는 미국 의회를 현장에서 이해하고 공부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년마다 열리는 전당대회는 4천963명의 대의원과 전세계 언론인 1만5천명 및 국내외 축하사절단 1만5천명 등 총 규모 3만5천명에 이르는 매머드급 행사였다. 민주당은 이번 행사를 위해 1년 전부터 전담팀을 구성했고 정규 직원 400명과 자원봉사자 1만5천명을 현장에 투입했다. 보안을 위해 동원된 경찰과 군병력만 해도 30개 여단 규모란 얘기도 있다. 게다가 6천만 달러의 의회 예산이 지원됐다고 하니 엄청난 행사 규모가 놀라울 따름이다.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인 존 케리와 부통령 후보인 존 에드워즈는 모두 법률가 출신 상원의원이다. 특히 케리는 1960년 케네디 대통령의 이름 첫자인 JFK와 같은 단어의 이름이고 같이 매사츄세츠주 출신 상원의원으로 이번 보스톤 전당대회에 각별한 애착을 보였다. 그래서 행사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역사적, 문화적인 해석을 곁들이는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의 흥미로운 특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케리는 새로운 선거강령을 발표했다. 선거강령의 핵심은 미국을 더 안전하고 강하며, 안정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 이라크 평화정착, 의료개혁, 미국 수호, 교육개혁, 환경보호, 외교정책 강화 및 대학교육 기회 균등 제공 등이 두루 포함됐다.
전당대회 기간 중 고어 전 부통령, 카터 전 대통령, 클린턴 전 대통령, 힐러리 상원의원의 연설이 이어졌다. 그들 가운데 클린턴의 연설은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대중에 어필하는 카리스마와 더불어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에 감동이 묻어났다. 케리 대통령 후보와 에드워즈 부통령 후보의 연설은 아주 꼼꼼하게 기획됐다는 느낌을 주었고 이슈 하나하나를 짚어갈 때마다 청중은 열광했다. 총기가 번득이는 눈으로 청중을 직시하며 열정을 토해내는 미국 정치인들의 논리와 내용의 충실함에 외국인일지라도 감탄을 아낄 수 없었다.
전당대회 동안 참관인들을 위해서 매일 오전, 오후 세미나가 개최됐다. 그 가운데 하바드대학 래리 서머즈 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학자와 정치인들이 어우러져 전개해 가는 지적 대화와 토론을 지켜보며 정치인으로서의 말과 생각을 어찌 다듬어야 할 지 익히는 좋은 기회였다.
미국 대통령 후보를 뽑기 위한 전당대회라고 하지만 나흘간 회의의 주제는 미국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21세기 전세계가 직면할 도전과 이를 헤쳐가기 위한 지혜를 모으는 자리였다. 에너지와 환경문제의 중요성과 생명공학이 지향할 방향에 대한 토론이 그런 면에서 시사하는 바 컸다.
이번 방미 중에 예상치 않던 성과가 있었다. 보스톤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출신 생명과학자들의 모임인 뉴잉글랜드 한인 생명과학 협회 회장단의 박사들을 만난 것은 뜻밖의 뿌듯함이었다. 생명과학 분야(BT)의 박사급 한인 과학자들만 600명에 이른다는 사실부터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미국 서부나 다른 동, 중부 지역까지 넓히면 대단한 인재 풀이 이미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서 우리 젊은이들의 꿈을 엿볼 수 있어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이들의 지력과 경험을 국가에서 십분 활용하지 못하면 21세기 국가의 성장을 가늠하게 될 생명과학 기술의 비전은 기대할 수 없겠다는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마지막으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보며 놀라웠던 점은 분 단위 진행에도 차질 없는 기획의 치밀함이었다. 정치행사를 완벽에 가까운 축제로 만들어가는 미국의 역량이었다. 또 정치는 이처럼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 녹아나야 하는 ‘생활 정치’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철저히 자국민을 위한 정치축제라는 점은 익히 알고 참석했지만 외국 참관자들에 대한 배려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점은 옥의 티였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참석을 통해 우리나라도 정치 따로, 국민 따로가 아니라 다원성을 존중하고 유지하면서도 국민들의 의지와 바람이 입체적으로 녹아 있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이루는데 일조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바르고 미래지향적이며 정치가 국민을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생활 정치’가 되는데 조그만 몫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