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은 우리에게 복잡한 의미로 다가온다. 감독은 명백하게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방해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한반도에 있는 우리로서는 우선 이라크 파병 문제와 함께 해석되는 작품이다. 2000년대 벽두부터 상종가를 치고 있는 한국 영화의 행진 속에서 이 영화와 같은 다큐멘터리물이 관심을 끄는 것은 다분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 영화가 SF도 멜로물도 액션물도 아닌 현장 보고서에 불과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김동원 감독의 ‘송환’과 같은 다큐멘터리가 우리 관객에게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을 생각해 본다면, ‘화씨 911’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대응은 놀랄 만하다.
 따라서 이 영화는 애초부터 텍스트 그 자체만을 위해 감상하기 위한 작품으로 다가서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라크 파병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강권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열패감, 명분 없는 전쟁을 밀어 부치고 있는 부시에 대한 거부감이 이 영화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서편제’ 관람이 우리에게 민족 정체성과 상상적 공동체를 체감할 수 있게 만든 계기로 작용했다면, ‘화씨 911’은 냉엄한 세계 현대사에 노출되어 버린 한국 국민의 선택을 성찰할 수 있게 해준다. 그만큼 이 영화는 우리에게 정치적인 영화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우리에게 가장 기초적인 윤리 교과서로 다가설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고, 비로소 우리 자신의 남루한 정체성을 마주 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화씨 911’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부시 일가와 빈 라덴 일가 사이의 오래되고 밀접한 친분관계를 주로 파헤친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이라크 침공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부시의 개인적인 이익 때문에 벌어진 것임을 주장한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부시를 형편없는 건달로 묘사하고 있으며, 그의 선택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는 지 밝힌다. 후반부는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병사들과의 인터뷰, 위선적이고 탐욕스러운 미국 정치가들과 무기 산업 관련자들에 대한 자료 화면을 통해 전쟁의 비인간성을 폭로한다.
 미래를 향한 행보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는 한국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마이클 무어의 선명한 당파성은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실재하는 현실 그 자체가 될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의 문법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재구성하고 편집하는 또 하나의 픽션일 뿐. ‘화씨 911’은 마이클 무어의 시선에 포착된, 또는 그가 보고 싶어하는 장면만으로 편집된 ‘해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감독이 전하고 싶은 ‘진실’에 대한 영화적 표현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우리 관객에 의해 전혀 새롭게 해석되고, 그 해석으로 영화의 빈틈들이 채워져야 한다. 혹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택에 대해 이중적인 잣대를 적용해 왔던 것은 아닐까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