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복수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복수심에 불타는 야수의 울부짖음’이다. 그녀의 칼날은 짐승의 발톱이었고 솟구치는 피는 야수의 포효였다.
 ▲엘파소 예배당의 결혼식 대학살=한적한 오후 시골의 예배당. 임신한 배를 웨딩드레스로 감싼 신부(우마 서먼)와 그녀의 신랑, 그리고 예닐곱 명의 사람들. 조촐한 결혼식 리허설이 시작되려는 순간 이들에게 총알이 쏟아지고 신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그 자리에서 숨진다. 그로부터 수년 후 기적적으로 깨어난 신부. 그날 총을 들고 나타났던 다섯 명의 이름을 수첩에 적고 이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지난 겨울 개봉됐던 ‘킬빌’이 14일 속편(KILL BILL Vol.2)으로 찾아온다. 전편까지 브라이드가 처치한 악당은 다섯 명 중 두 명. 암살단 ‘대들리 바이퍼’ 중 남은 사람은 이제 빌을 포함해 세 사람이다. 2편은 1편에서 드러내지 않았던 예배당 학살의 진짜 스토리를 이야기해주며 시작된다.
 ▲홍콩 무협영화와 마카로니 웨스턴에 대한 오마주(hommage·존경)=비디오 가게 점원 출신에 액션영화 광 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2편에서도 이 분야에서 자신의 박학다식함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전편이 일본 사무라이 영화에 대한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헌사로 메워졌다면 속편에서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홍콩 무협영화와 마카로니 웨스턴. 잘 꾸며진 일본식 정원에서 팔을 날려버리고 피를 뿜게 하는 식이었던 복수는 삭막한 멕시코를 배경으로 발차기와 총싸움으로 진행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필살기(必殺技)도 손가락으로 몸의 혈 을 막는 오지심장 파열술이다.
 브라이드의 스승으로 등장하는 고돈 리우(유가휘)는 1970년대 홍콩 쇼브라더스의 단골 액션스타며 빌 역의 데이비드 캐러딘도 비슷한 시대 미국 TV 시리즈 ‘쿵푸’의 유랑자.
 한편 예식장 앞에서 브라이드와 빌이 마주치는 첫 장면의 숨막힘은 서부영화에 빚을 지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깔리는 음악도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 스타일이거나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영화들에서 따왔다.
 ▲빌을 죽여라=속편은 전편에 비해 이미지가 강렬하기보다 구구절절한 설명이 많아졌다. 브라이드의 본명이 무엇인가, 왜 빌이 그녀를 죽이려 했는가, 왜 그녀가 빌을 떠났나 등의 뒷얘기가 하나씩 드러나고 브라이드의 수행과정에도 과거 회상을 통해 시간이 할애됐다.
 첫번째 복수의 대상은 빌의 동생으로 지금은 작은 술집의 ‘어깨’로 전락한 버드(마이클 매드슨). “그녀가 복수하는 것은 당연해”라며 죄책감을 느낀다고 해서 그가 약해졌다고 생각하면 성급한 판단이다. 버드의 캐러밴(트레일러)을 습격한 브라이드는 오히려 역습을 당해 관 속에 갇혀 산 채로 매장된다.
 바로 죽이지 않는 것은 “지긋지긋한 고통을 주다가 죽여라”는 또 다른 멤버 엘드라이버(대릴 한나)의 ‘당부’ 때문. 땅 속에 묻혀 있던 브라이드는 스승 파이메이(고돈 리우)가 준 교훈을 회상하며 탈출에 성공해 두 사람을 헤치운다.
 이제 남은 사람은 빌 한 명뿐. 하지만 수소문 끝에 찾아간 그의 집에는 4년 전의 학살에서 살아남은 자신의 딸이 기다리고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식의 ‘오버’나 약간의 잔인함과 조금의 비관습적 줄거리 구성을 일단 받아들이면 영화는 액션 영화의 팬들뿐 아니라 스타일 있는 화면을 찾는 영화 팬들에게 더 할 나위 없이 푸짐한 성찬이다. 1편은 할리우드와 일본에서의 성공에 비해 국내 흥행에서는 실패했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의 열광적 지지를 이끌었다.
 국내 상영판은 전세계적으로 상영되는 버전의 무삭제 판이다. 18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3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