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 물결친 인천춤, 한국예술(하)
 14일 오전 9시. 승용차에 오르는데 명주실같은 이슬비가 흩날렸다. 일행이 도착한 뒤부터 내린 비는 3개월여 만에 내린 비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쉽게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30여명의 무용단은 트럭 한 대 가득 실은 소품과 함께 버스를 타고 ‘베·소 컬쳐럴 팔라스’(베트남·소련 문화궁전)로 향했다. 공연은 이날 오후 8시로 잡혀 있었지만 무용단은 아침 일찍부터 부산히 움직였다. 하긴, 박재춘 단무장과 조명 담당 이나구씨는 13일부터 연 이틀을 동굴처럼 컴컴한 베·소 컬쳐럴 팔라스 극장에 머물고 있었다. 관객들은 편안한 객석에서 짧은 시간 보석처럼 빛나는 공연을 접한다. 그러나 그것을 준비하는 단원과 스텝의 노고와 시간은 관람시간의 수십 배에 달한다.
 기자와 몇몇 일행은 ‘호치민 박물관’으로 향했다. 리허설은 오후에 잡혀있었으므로 오전 11시까지만 문을 연다는 호치민 박물관을 들리기로 한 것이다. 차도는 역시 온통 오토바이로 들끓었다. 기자가 탄 승용차는 마치 오토바이 무리에 뭍어서 쓸려가듯 앞으로 나아갔다. 승용차 가운데엔 대우차가 눈에 많이 띄었다. 베트남에는 전 세계 11개 자동차가 경쟁하고 있다. 대우는 일본 도요다 자동차에 이어 베트남 자동차 시장의 30%를 점유중이다. GM대우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법인을 인수한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현지에서 대우차를 사려면 마티스 1천400만원, 누비라 2천400만원, 매그너스는 4천만원은 줘야할만큼 관세가 비싸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대우차를 매우 선호하고 있었다.
 호치민박물관 앞에 이르자 많은 사람들이 수백m 줄을 서 있다. 가방을 맡기고 줄을 따라 호치민의 미이라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전 세계에서 현대사 인물 가운데 미이라로 만든 사람은 레닌, 호치민, 김일성 세 명 뿐. 호치민은 군인들의 삼엄한 사주경계 아래 눈을 감고 편안히 누워있었다. 붉은 조명을 받은 호치민 미이라는 그 자체가 예술품이었다. 붉그스레한 조명이 애무하는 하얀 얼굴… 저 하얗고 가녀린 선비가 베트남을 통일한 공산혁명가란 말인가. 미이라를 안치한 건물을 나와 호치민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의 집무실엔 모자와 책 서너권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호치민은 그의 창백한 얼굴만큼이나 청렴결백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무소유… 그것은 진정 세상을 모두 소유하는 것이리라. 박물관을 등지고 나오는데 여전히 흩날리는 봄비가 얼굴에 촉촉히 와 닿았다.
 문화궁전에 일행이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쯤. 연습이 대가를 만든다고 했던가. 단원들은 공연의상을 입고 몇 차례고 반복해서 연습을 했다. 공연장 안은 덥지 않은 편이었으나 단원들의 얼굴에선 계속해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공연 시간인 오후 8시가 다가오며 한명옥 감독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춤사위가 부드러워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 감독과 단원들의 얼굴은 조금씩 굳어져 갔다.
 7시30분. 사람들이 군데 군데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8시가 되자 1, 2층 극장 객석이 가득 찼다. 그다지 여유가 많지 않은 사회주의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놀랄만한 현상이었다. 특히, 비가 내리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베트남 사람들이어서 주최측은 은근히 걱정을 하던 차였다. 앞서 주최측은 1천7백여장의 초청장을 발송하고도 신청문의가 계속 들어와 초청장을 추가 인쇄해야 했다. 알고보니 이는 베트남 사람들은 이미 2년전 인천시립무용단의 공연을 접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연기가 피어나며 막이 오르자 무대에는 처용무와 학춤, 연꽃무가 어우러지며 ‘전설같은’ 춤결이 흐르기 시작했다. 처용들은 이제 막 날아오르려는 학의 날개처럼 하얀 장삼자락을 펄럭이며 역동적인 시작을 알렸다. 이어 두 쌍의 학이 목을 비비며 사랑을 나누었고, 네 개의 연꽃을 톡 터뜨리자 연꽃이 만개하며 천상의 선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관객들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태에 넋을 빼앗긴 채 선녀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주시했다.
 암전 뒤. 눈부신 ‘세모시 옥색 치마’와 흰색 저고리, 빨간 장구를 어깨에 둘러맨 무용수들이 미끄러지듯 무대로 나왔다. 장구는 내가 되고 나는 장구가 된 ‘물아일체’의 광경이 펼쳐졌다. 오 우∼. 입을 꾹 다물고 침만 삼키던 관객들의 입에서 마침내 탄성이 터졌다.
 나나니춤에서 관객들은 인천의 참모습을 읽었다. 부채춤에서 무용단은 몇 차례나 화사한 꽃을 피웠다. 물고기떼처럼 화르르 흩어졌다가 일순 동그랗게 모이며, 때론 공작의 꼬리를 만들고 때론 지상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사람의 꽃’을 활짝 피워냈다. ‘인천의 꽃’을 만난 관객들은 환호성과 함께 손바닥이 터져라 박수갈채를 보냈다.
 검술을 예술로 승화, 대륙의 기상이 넘쳐흐르는 장검무와 북춤에 이은 ‘두드리라’에서 관객들은 차라리 강한 충격을 받은듯한 표정이었다. 페이소스에 휩싸여 붉게 상기된 얼굴, 얼굴들…. 하노이의 대지를 두드리는 굵은 소나기 같은 북소리가 이어지는동안 환호성과 박수를 멈추지 않았고, 공연이 끝났을 때 양 국의 국기가 무대 양쪽에서 힘차게 펄럭였다.
 인천시립무용단은 이날 현란하면서도 변화무쌍한 춤결로 베트남인들의 혼을 쏙 빼 놓았다. 이와 함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입증하며 현지인들에게 아쉬움을 심어주었다. 한편, 무용단의 공연 중간중간에 베트남 무용이 가미돼 이날의 공연은 명실공히 한국·베트남이 하나된 위대한 위대한 합작품으로 승화했다.
 공연을 관람한 로안 씨는 “한국의 춤에는 베트남춤에서 볼 수 없는 에너지가 있는 것 같다”며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세계 그 어느나라 춤보다 감동적인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옌 씨는 “재작년에 보고 감동을 맛봤다”며 “올해는 친구들을 많이 데려왔는데 친구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까지 받았다”고 웃음지었다.
 인천의 춤은 바야흐로, 국경을 넘고 인종을 넘어 세계로 비상하고 있었다.<베트남 하노이=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