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천 회장(47)은 딱 보면 외모부터가 ‘록’ 을 하는 사람 같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치렁치렁한 장발을 질끈 뒤로 묶은 것이며, 찢어진 청바지, 굵은 쇠 목걸이가 그렇다. 고집스럽게 한가지 길을 걸어온 사람이라는 표시가 금방 난다. 그동안 3장의 그룹과 솔로 음반을 냈지만 모두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어 이내 사장 되는 아픔도 맞봤다.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지난 77년 고교(인천 동산고) 졸업 후 본격적인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하드록만을 고집했다. 딥퍼플이나 지미 핸드릭스, 배드컴퍼니 등의 곡을 카피해 연주하는 활동이 너무 재미 있었다. 이후 군대(해군 군악대)에서도 기타리스트로 활동해 기타를 손에 놓을 새가 없었던 것 같다.
 -처음 기타를 잡은 시기는.
 ▲중학교 3학년때 하드록에 심취하면서부터다. 부평에서 자라서 근처 미군부대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AFKN을 통해 록 그룹 공연을 접하고 기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통기타에 청바지’가 전부인 시절이어서 젊은이라면 누구든 3∼4개 기타 코드는 아는 정도였다. -인천밴드연합은 어떻게 만들어 졌나.
 ▲대중음악이 왜곡돼 가고 있다. 댄스가수 일변도다. 우리 같은 사람은 설자리가 극히 제한돼 있다. 대중음악은 한쪽만 자라나면 결국 기형아가 될 수밖에 없다. 댄스든 록이든 트로트든 재즈든 각 분야별로 골고루 성장 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돼야 한다. 이런 바람을 이루고자 뜻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쳤다.
 -음악생활을 후회 한 적은 없나.
 ▲없다. 앞으로도 죽을 때 까지 음악을 할 것이다. (음악을)잘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은 솔직히 할 줄 아는 게 없다.
 -꿈이 있다면.
 ▲인천에 ‘섬 록 페스티벌’을 만들고 싶다. 영국의 우드스톡 페스티벌처럼 관객이나 록커가 야외 캠프를 치고 4∼5일간 함께 연주하고 즐기는 그런 것 말이다. 인천의 섬지역은 그런 조건을 잘 갖추고 있어 추후 대표축제로 키워 볼만하다는 생각이다. <백종환기자> k2@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