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을 펴고 세상을 보자/ 홍인기·소설가>
 우리는 지금 첨단의 전자문명 위에서 유희에 빠져있다. CD 한 장에 수천 권 분량의 내용을 저장하고 인터넷을 통하면 세계의 온갖 정보를 간단하게 얻을 수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스포츠 제전을 실시간으로 감상하고 그 감흥을 곧바로 이웃에 전하며 자신의 의견을 서슴없이 송신하기도 한다.
 바야흐로 사이버 세계에서 우리는 이미 세계인이 되어있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인 듯하며 전지구적 경계는 벌써 무너진 듯하다. 그러므로 새삼스럽게 민족이니, 국가니, 지역이니, 구분하는 것이 의미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과연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매트릭스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세계에 마냥 몸을 실어가야 하는가.
 16년 전 아내와 함께 인천에 와서 신혼을 꾸리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찌된 일인지 시골출신인 내게 고향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서울은 너무 먼 곳에 있었다. 인천 출신 아내 덕에 거처를 인천으로 정한 거였는데, 그땐 무서울 게 없는 시절이었다.
 구멍가게를 운영하기도 했고 여러 해를 목욕탕이나 여관, 그리고 슈퍼마켓에 음료제품을 배달하기도 했다. 16년을 살며 나는 살벌한 도시적 경쟁보다 팍팍하지 않은 인심이 아직도 도저에 흐르는 이 도시를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다. 특히 문학판이 그러했다. 여러 선후배 문학인과 동료들의 문학적 정이 그러했다. 그분들 대개가 지역애정을 기반으로 문학적 실천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 인천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는, 또는 인천과 관련된 도서의 ‘30㎝ 서가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반갑고 소중한 일이다. 컴퓨터와 무선통신의 놀라운 문명현장에 과연 ‘책’이라는 존재가 아직도 그 불변의 위상을 간직하고 있는가, 라는 회의가 분분한 이 즈음에 역설적으로 통쾌하게 반역하는 시도라고 믿는다. 허공에 지어진 수많은 전자집에서 두 발을 공중에 띄운 채 유영하는 우리들에게 실재적 정체감을 회복시켜줄 계기가 분명하다.
 책을 펴고 세상을 보자. 이는 선인들이 주창해온 오래된 진리임에 틀림없다. 책 속에 삶과 영혼을 살찌우는 지혜가 있으며 길이 있으며 진리가 담겨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