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근대출판의 역사는 곧 인천의 정체성 찾기와 맞닿아 있다. 사료적 가치가 높은 이들 출판물의 내용이 근대 초기 인천문화를 증언해주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해방 이전으로 따지면 인천의 중요한 사건을 기록한 ‘인천부사’가 최초의 주목할 만한 서적임을 부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인천부사’는 일본인들이 만든 책이므로 인천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인천책이라고 보기엔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이에 따라 1955년 출간한 ‘인천석금’이 인천서적의 첫 발자국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이 책은 인천의 정체성에 대한 최초의 질문을 던진다. 인천 근대문화의 주역이자 산 증인인 고일 선생은 ‘주간인천’에 1년 정도 연재한 글을 묶어 책으로 펴냈다. “나도 인천사람 당신도 인천사람이니 대관절 인천이란 곳과 인천사람이란 것은 어떠한 것인가’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고일 선생은 책에서 인천이 근대 이후 ‘지문학적 존재의의’ 때문에 제물포가 개항하면서 시작된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식민지시대를 거쳐서 그 역사와 문화가 흐려지기는 했지만 역사적 연원을 거슬러 오르며 지역문화를 살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인천석금’에 실린 수많은 흥미진진한 근대 초기 인천이야기는 바로 인천의 문화적 정체성을 되살리려는 노력으로 비친다.
 ‘인천석금’에 뒤이어 출간된 최성연 선생의 ‘개항과 양관역정’ 또한 제물포 개항장이 들어서면서 형성된 도시 인천의 흐려져 가는 근대역사와 문화를 지키려는 열정으로 10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출간됐다.
 ‘인천 개항 이래 76년! 손을 꼽지 않고도 그 연륜을 셈할 수 있도록 나이어린 도시다. 그러나 치외법권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지계제도를 발판으로 발육되어 온 인천의 과거는 유례없이 기구하였다…’ ‘개항과 양관역정’ 후기는 개항 이후 근대도시로 성장한 인천의 지역적 정체성을 찾고, 한국 전쟁 이후 다시 상실돼 가는 인천의 역사적 정체성을 밝히기 위해 편찬했음을 밝히고 있다.
 1953년 7월22일부터 9월16일까지 9회에 걸쳐 ‘인천공보’에 연재한 것을 1959년까지 확충하고 보충해서 출간한 이 책은 ‘치욕적이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모르는 체 할 수 없다’는 의지를 밝힌다. 이 책은 또 한국 근대건축 연구를 위한 필독서일 뿐 만 아니라 한국 근대문화 형성과정을 연구할 때에도 일급문헌이 되고 있다.
 이경성 선생에 뒤이어 인천시립박물관장에 취임한 서예가 검여 유희강 선생은 이경성 선생 이래 연구, 조사된 자료를 바탕으로 1959년 ‘인천의 안내-고적·명승·천연기념물’을 펴냈다. 부록으로 전설까지 수록한 전 78쪽의 이 책자는 근대 이전의 인천역사와 문화유산은 물론, 근대 이후 문화유산에 이르기까지 섭렵하고 있다. 또 인천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이 비단 근대 이후에 한정된 것이 아님을 다양한 문화유적에 대한 소개를 통해 개진한다. 이 책은 최근 활발해지고 있는 고고학 분야와 역사학 분야의 문화재 지표조사의 선구적 연구성과이면서 동시에 전통시대 인천의 문화를 연구함에 있어서도 반드시 참고해야 할 문헌으로 꼽힌다.
 그러나 고일, 최성연, 유희강 선생의 선구적 노작들과 이경성 선생의 인천 향토사 연구의 중요성에 대한 탁월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후 인천문화와 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와 출판 작업은 연이어 이뤄지지 못했다.
 인천시가 인구 100만을 거느린 직할시로 승격한 1981년과 한미수교1백주년이 되는 1982년을 지나 1983년 인천 문화 연구사에서 기념할 만한 책이 출간된다. 고일 선생의 후배세대로 식민지시대 인천에서 학생시절을 보내고 해방 이후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전개했던 신태범 박사의 ‘인천 한 세기-몸소 지켜본 이야기들’(홍성사)이 출간된 것이다.
 신태범 박사는 인천에서 학교를 다니며 겪고 들은 이야기들을 ‘인천 한 세기’에 묶었다. 인천의 명승지와 그 역사 근대 개항기의 여러 문물들, 거리와 지명과 시설, 식민지시대 인천인의 삶과 저항을 보여주는 상가와 단체들, 다양한 족적을 남긴 인천의 인물들에 대한 구체적인 체험담을 들려줌으로써 한동안 적막했던 인천 근대문화에 대한 향수와 관심을 던져줬다.
 한편,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인천예총이 ‘인천예총’이란 기관지를 발간했고 산하단체인 ‘인천문협’은 1990년대 ‘학산문학’이란 계간 문예지를 발간했다. 1988년엔 월간 문화교양지인 ‘월간인천’이 창간하면서 인천문화계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김영일·조기준·이훈익·이선주씨 등 향토문화 관련 서적들이 출간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83년엔 근로자 자녀들을 위한 장학회로 출범한 새얼장학회(현 새얼문화재단)는 1985년 ‘새얼’이라는 소식지를 발간해 인천의 역사적 정체성을 제기하고 황해의 배꼽에 위치한 인천의 활로를 모색하는 다양한 글들을 발표한다. 1993년엔 ‘황해문화’의 초대 주간을 맡은 최원식 교수는 ‘전 지구적 사고, 지역적 실천’을 모토로 인천문화 재건을 위한 방략을 제시한다.
 1995년 지방자치제의 전면적 실시와 인천광역시가 출범하면서 향토사학자들의 출간이 활발해진다. 조기준의 ‘부평의 땅이름’ ‘부평사’, 이훈익의 ‘인천지방 향토사담’ ‘인천지명고’, 김양수의 ‘인천개항백경’, 김순제의 ‘인천, 경기지방의 일노래’, 이성구의 ‘개화의 선구지 인천’, 최근식의 ‘인천향토사’, 조우성 외 ‘간추린 인천사’ ‘월미도이야기’ 등이 그런 책들이다.
 2000년 들어서는 다양한 공동연구의 성과들이 제출되기 시작하였는데, ‘왜 다시 인천인가’ ‘2001 인천재발견’ 등이 그러한 성과다. 지역출판물을 본격적으로 출간하는 다인아트 출판사의 등장도 특기해야 할 것 같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최근 젊은 연구자들의 지역에 대한 관심도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는데, 지역운동과 문화운동의 결합을 주장한 이희환의 ‘인천문화를 찾아서’를 시작으로 이현식, 김창수 등의 연구자들이 새로운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인천출신 작가나 인천을 배경으로 한 문학서적은 언급하는 것이 무가치하다.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