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편삼절(韋編三絶)-김윤식/시인
일찍이 양주동이 그의 명 수필 ‘면학의 書’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일렀으되 공자의 이 위편삼절(韋編三絶) 고사에만은 따르지 못할 듯하다. 위편(韋編)은 가죽으로 맨 책 끈을 뜻하는 말로 이 시절에는 종이가 없었던 까닭에 대(竹)쪽에 글을 써 가죽 끈으로 꿰매 묶었던 것이다.
위편삼절이라는 말은‘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孔子晩而喜易 讀易…韋編三絶”이라 한 데서 비롯한다. 즉, 공자가 늘그막에 주역 읽기를 좋아해서 한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읽는 바람에 그 책을 묶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닳아 끊어졌다는 것인데 이 고사는 후세에 와서 책을 열심히 읽고 학문에 정진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 위편삼절 고사는 나와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문과에 입학하면서 딴에는 제법 학문에 대한 야무진 결심을 했다. 그것은 바로 그 양주동의 글에서 자극 받은 것으로 나도 4년 동안에 논어를 비롯해 사서삼경을 독파한다는 것이었다. 입학식이 끝나자 이내 뛰어나가 헌 책방을 뒤지고 해서 대한한자전(大漢韓字典)을 사 들인다 어찌 한다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결국 내 호들갑스러운 독서 계획은 학년이 높아갈수록 아주 천연스럽게 먼지만 싸이며 사그라졌다. 방학 몇 번이 후딱 지나고 이윽고 4학년이 되었을 때는 고작 논어 하나만이라도 읽은 후 대학을 마치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역시 생각대로 그렇게 쉽게 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당시 우리 대학에는 저 한학의 대가 이가원 선생이 계셨는데 그 때 선생께서 이 딱한 제자를 경계해 적어 주신 말씀이 다름 아닌 위편삼절이었다. 그러나 논어마저도 마음뿐으로 결국 앞부분의 학이(學而), 위정(爲政) 등 몇 편만을 뒤적이다가 졸업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위편삼절 이 말만은 사십이 되고 오십이 훨씬 넘어서도 영 잊혀지지가 않았다.
마침내 논어 한 권을 통독한 것은 사십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學而時習之, 이 첫 구절에서 드디어 제 20편 요왈(堯曰) 끝 장 ‘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爲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에 이른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실로 감격이었다. 그 나이에 이르러 논어를 읽은 것이 오히려 훨씬 더 깊고 오묘한 의미를 새길 수 있었다는 핑계도 따랐다. 그리고 그 후 천고만난 노력 끝에 도합 3번을 더 완독했다. 실상 논어만큼 삶을 살아가는 데 지침이 되는 책은 없기 때문이었다.
독서에 대한 허황한 결심과 과대한 목표로 해서 나는 이런 웃음 나는 추억을 가지고 있다. 사서삼경이 아니라 논어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가죽 끈을 닳게 해야 하는 것을.
독서에 대해 말하려면 내게는 이렇게 공자의 논어와, 또 위편삼절에 대한 사연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 내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