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21세기는 「문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 말한다. 한 국가가 갖고 있는 문화적 힘이 곧 국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다른 분야와 달리 문화예술 진흥은 마음먹는다고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발전을 위한 다각적인 방법을 찾아내 단계적으로 실천해나갈 때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 세기에 문화예술분야 경쟁력을 갖추려면 지금부터라도 현 실태를 면밀히 분석해 장기적인 보완ㆍ수정대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청사진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천시 문화예술 현주소는 어떤가. 20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지역의 문화예술 실태를 점검해본다. 하드웨어라 할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 즉 인천종합문예회관을 비롯한 서구ㆍ계양구 문화회관, 인천문화회관(수봉공원)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 문화예술 시설인 서울 예술의 전당과 경기지역 문화예술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경기문화재단의 운영시스템을 통해 그들로부터 받아들여야 할 점, 그들이 시행착오를 겪은 점들이 무엇인지를 알아본다.

 연재에 앞서 이철순 예술의 전당 홍보섭외팀장의 기고문을 싣는다. 인천을 비롯한 각 지역 문화회관 운영 실태 및 문화예술 정책 전반을 다룬 이 글에는 본보의 기획의도와 앞으로 다룰 내용이 함축되어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소를 기르려고 축사를 짓는다고 하자. 축사를 너무 크게 지은 나머지 소를 살 돈이 없어 축사를 덩그러니 비워두었다고 하면 이를 두고 우매한 짓을 했다고 할 것이다.

 80년대에 들어 전국적으로 각 시ㆍ도에 문화회관을 짓기 시작하였다. 문화회관을 축사에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축사를 그렇게 크게 지었을 때의 우를 문화회관을 볼 때마다 연상하게 된다. 축사를 운영하는 것은 소를 사서 넣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사료 값을 비롯한 운영자금이 필요하다. 문화회관 역시 운영이 더 중요하다. 그럼에도 전국 어느 문화회관도 연간 운영비를 제대로 책정한 곳이 없다. 많아야 20억원 내외다.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의 99년도 예산이 27억원이다. 그러나 정작 기획예산 비용은 하나도 없다. 단지 교향악단을 비롯한 산하단체에 사업비가 약간 있을 뿐이다. 시립예술단 38억원 예산중 인건비가 35억원이고 3억원 정도가 예술활동적 경비다.

 요즈음 문화회관 건축비가 적게는 5백억~6백억원 많게는 1천억원도 든다 한다. 1천억원짜리 문화회관이 제값을 다하기 위한 운영비는 최소 건축비의 10%로 본다고 해도 1백억원은 필요하다. 예술의 전당 건축비 1천5백억원에 연간 예산이 2백억원 규모지만 운영에 허덕인다. 10%라는 비율은 건립투자비의 최소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문화회관의 운영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은 대극장, 소극장, 전시실, 회의장 등 세종문화회관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예산이 이러하면 극장은 그 기능을 얘기하기에 앞서 시설의 감가상각 자체가 아까운 일이 되고 만다.

 건물은 그냥 놔두면 노후화된다. 잘 써먹는 것이 건축을 살리는 길이다. 시설은 유지관리비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드는 법이 없다.

 이에 앞서 생각할 것이 과다시설 규모와 기능이다. 문화회관은 시공 첫삽을 뜨기전에 가용재원, 기능, 목적 등을 정확하게 설정한 뒤 20, 30년 나아가 50년, 100년을 바라보고 지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문화회관은 그 지역 인구 규모나 수용가능 예술분야, 그 지역사람들의 문화향유층 구조 등을 감안하지 않고 무작정 크게, 과대한 기계시설을 투자하였다. 운영이 버거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현재에서 최상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첫째로 운영형태가 어떻게 되든 예산 배정이 건축비의 10%선 확보가 시급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 극장은 짓지 말았어야 한다.

 둘째 극장운영은 조직을 갖춘 상태에서 운영이 가능하다. 극장의 기계시설 운영인력, 기획인력을 갖춘 최소 조직마저 갖추지 못한 국내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최근 국공립문화기관 민영화가 추세인 듯하다. 그 경우 경계해야 할 것은 세계 어느 공공문화기관도 수익을 남기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 공공자금 지원과 자체수익이 업무활성화를 기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로는 뛰어난 기획자의 영입과 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다. 기획자는 예술감독으로서의 역할과 그 극장의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으로서 극장의 성격과 성과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중요한 위치다.

 한편 과거 문화예술기관이 공급자 중심 또는 계몽적 성격의 프로그램 제작이 주였다면 이제는 소비자 중심의 프로그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소비자와의 영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비자 교육프로그램도 중요하고 소비자들의 문화 변별력을 키워주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지역문화기관이 수행해야 할 문화란 바로 지역주민에게 필요한 문화적 영양분이다.

 지역성은 곧 그 지역에 걸맞은 독특성과 남다름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각 지방에서 개최되는 국제 행사가 그 특성을 찾기 어렵고 지역주민과 문화적 교감을 얼마나 이루고 있는지 알바 없는 것이다. 대규모 도시인 경우 이런 유혹을 떨치고 실속있는 기획을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전제는 문화를 가치있게 보느냐 여부에 달린 것이다.

 다시말해 문화예술을 전시행정의 수단으로 생각하거나 단 한번의 행사를 통해 일시에 지역주민의 문화적 정서가 향상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위험천만인 생각이다.

 문화예술은 그렇게 냄비처럼 쉽게 달아 오르는 것이 아니다. 한옥의 구들장처럼 은근하고 천천히 달아오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인천광역시처럼 메트로도시의 성격을 갖는 큰 도시의 문화예술공급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대규모 행사를 선호하는 경향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문화예술은 점차로 소규모 지역단위 문화활동이 중요하고 확대되어야 한다. 구 단위의 문화활동을 활성화하고 학교를 통한 문화사회교육의 강화는 전국지방 어느 곳이나 필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제 곧 2000년이 시작된다. 각 지방이 적게는 몇억원에서 수십억원까지 밀레니엄 사업이란 이름하에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다. 이 경우에도 행사성 위주 프로그램에서 문화향수에 만족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그 방향이 설정되어야 투자된 예산이 낭비가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