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철 정치부장
 인천 사람들이 느끼는 서울과, 서울 사람들이 느끼는 두 도시간의 심리적 거리는 너무 다르다.
 경인전철이나 경인고속도로를 이용, 서울로 출퇴근하거나 등하교하는 인천 사람들은 서울이 그런대로 다닐 만한 곳이다.
 그러나 서울 사람이, 심지어는 목동이나 등촌동 쯤 사는 서울 사람들에게조차도 인천은 한나절 나들이 길을 넘어서는 부천 너머 먼 서쪽의 바닷가 쯤으로 인식된다.
 사람들은 늘 제가 다녀 본길은 가깝게 느끼고 초행 길은 멀게 느낀다.
 수원으로의 길이나 심지어는 용인의 수도권 신도시들까지도 다닐 만하다고 느끼는 건 서울 사람들이 경부철도나 경부고속도로의 이용이 월등 많았고 용인에버랜드나 민속촌 등을 통해 자주 다녀 본 길인 탓이다.
 심리적으로 먼 거리는 투자의 장애물이었고 인천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겪었던 섭섭함도 적지 않았던 세월이었다.
 에둘러 길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인천 경제자유구역 얘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분명 아직은 서울이, 좁혀서는 서울 사람들은 경제자유구역의 진가를 모르고 있다.
 이 나라 돈과 인재의 거의 모두가 집중돼 있다는 서울의 절대 주류들은 개도 웃을 당쟁(黨爭)과 투전에 다름아닌 얄팍한 부동산 거품에 빠진 채 코 앞 인천의 미래 가능성을 좌시하고 있는 것이다. 막연한 심리적 거리와 자신들의 자만에 눈이 가려 어느 날 서울 근교로 외면했던 한 지방의 주도로 일궈 낸 거대한 프로젝트를 애써 못본 채 하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시장을 포함한 일단의 인천 지방정부 사람들로 구성된 외자유치단이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 송도신도시에 대한 127조원의 흥정을 마치고 그 일을 청와대며 중앙 정부에 보고 했을때 그 사실을 곧이 곧대로 믿은 중앙 인사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막상 일이 도장 찍을 때쯤 이르자 경제부총리가 부랴부랴 인천시장의 옆자리에 배석했지만 별다른 보탬을 준 일도 없는 처지의 계면쩍음은 잘 알려지지 않은 뒷 얘기다.
 그들만의 메인스트림이 아니었던 탓에 이 심리적 원거리에 놓여있는 한적한 지방에서 벌어지는 매일매일의 거사(巨事)는 이른바 메이저 매스컴으로부터도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조용히 한 발 한 발 악착스럽게 전진을 거듭하며 미래를 위한 폭발음을 준비하고 있을뿐.
 세계의 공장 중국으로 이 나라 제조업의 근간이 너나할 것 없이 짐을 꾸리는 판에 앞으로 이 나라 백성들이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라는 문제 제기는 이미 진부할 정도다.
 입으로는 지식산업, 벤처·IT산업을 주문처럼 외지만 규제의 실타래가 풀리길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 훌륭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지난 세월의 경제적 풍요를 일궈왔다면, 이젠 더 이상의 수혈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질 높은 교육 환경을 향한 엑소더스도 그칠 줄을 모른다.
 바로 그 21세기적 대한민국의 해법이 송도를 위시한 인천 경제자유구역에만 있다고 주장한다면 정책에 대한 과공(過恭)이라는 지적은 십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별다른 대안 없는 유일한 바로 그 해법을 이 나라 어떤 메인스트림에도 끼지 못해 그저 수도권의 등잔 밑으로 치부됐던 인천 사람들이 꿈꾸어 만들어낸 일이라는 사실을 양보할 생각은 없다. 
 해불양수(海不讓水)라 했던가.
 스스로 장관을 만들어낸 일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빈한한 인적 자원을 가졌던 인천 사람들이 당대의 엘리트들을 차례로 불러모아 인천의 일을 맡기는 의연함도 일을 대하는 호연지기에 다름 아니다.
 미래 산업의 부가가치와 미래 인재를 키워낼 토양이 바로 인천 경제자유구역에 있음을 미리 깨닫고 앞장서 온 인천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며 나라와 민족의 영광을 위한 깃발을 높이 쳐들때다.
 중국 경제의 핵은 오늘 날 단연코 상하이(上海)다.
 지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콧방귀로 일관하던 베이징(北京)은 그들의 독보적 입지였던 정가(政街)마저 상해 출신들을 일컫는 이른바 상해방(幇)들에게 내 준지 이미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