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수 경제부장
 한 유명 연예인의 결혼식이 화제다. 임신을 했다느니, 아이를 낳았다느니, 누구와 연애를 한다느니, 수 십평 이상짜리 아담한(?) 집에서 어떻게 산다느니, 조금이라도 이름만 알려진 대중스타의 사생활이라면 사활을 걸고서라도 끝까지 추적해 시시콜콜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매체들덕분에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도 이 연예인의 결혼식 비용이 2억원이고 결혼사진 촬영때 입었던 옷이 5천만원짜리라는 사실을 손 쉽게 알 수 있다.
 듣기 싫어도 귓구멍이 뚫려 있으면 마치 의무적으로라도 들어야한다는 식의 이 같은 정보의 홍수속에서 수 많은 서민들-전기와 수도요금 낼 걱정이 태산이고 치솟는 물가에 시장가기조차 내키지 않는-의 가슴에 새겨진 멍은 더욱 시퍼래져만 간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지난 8월 한 달동안 해외로 나간 출국자가 사상 최대치인 79만3천여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순수 관광목적의 출국자는 절반을 넘는 43만2천여명이었다.
 이 같은 현상은 추석연휴때도 이어져 동남아시아와 중국, 일본 등지의 항공노선 예약률이 80-90%대로 지난해의 60-70%에 비해 지역별로 10-20%포인트가 높아졌다.
 기업이고 가계고 너나할 것 없이 “먹고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높아지고 있다. 98년 IMF때보다도 더욱 심각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실제 각종 경기지수도 이 같은 상황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이 올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5%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은 가운데(내년에는 올 보다 다소 희망적이기는 하지만) 지역적으로도 8월 현재 인천의 실업률은 두 달연속 오름세를 나타냈다. 취업자수는 117만1천명으로 전달보다 3만1천명이나 줄었다.
 한국은행 지역본부가 엊그제 발표한 ‘2003년 3·4분기 소비자동향 조사결과’도 지금 가계살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생활형편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지난해 2·4분기이후 5개월 연속 하락했고 현재 생활형편 지수도 기준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것을 두고 무어라 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과거처럼 끼니를 걸러야 했던 절대 빈곤은 아니더라도 국민 대다수가 돈걱정에 한 숨을 쉬고, 생활고를 비관해 사랑하는 어린 자식들까지 껴안고 생을 버리는 사건이 곳곳에서 터지는 상황이라면 사정은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일부 부유층의 사치와 호화가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한 것은 비단 지금 뿐만이 아니다. 조선시대 ‘가체’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여인들이 쓰는 높고 화려한 머리장식으로 ‘가체’를 하지 않으면 상류층 여성으로 대접받지 못할만큼 사대부집 여인사이에 유행이었다. 문제는 이 ‘가체’ 한 개의 값이 70만냥으로 당시 중인계층 10가구의 재산과 맞먹었다는 점이다. 쌀로는 무려 수 만가마 값어치였다.
 청나라에서 수입된, 화려한 무늬가 놓인 ‘사라능단’도 부유층 여인들의 빼놓을 수 없는 사치품이었다. 급기야 영조는 ‘사라능단’의 수입을 규제하고 국산 비단에까지 무늬를 못 넣도록 규제하는 조치를 취하기에 이르렀다. 또 사대부가와 부유층 여인들의 사치근절을 위해 그 가장이나 남편을 처벌하는 규정도 만들었다. 영조 뿐 아니라 조선초기부터 왕들은 사치를 근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오죽했으면 ‘사치하는 자 장 100대에 처한다’는 규정까지 만들었겠는가.
 이보다 훨씬 앞선 통일신라시대 흥덕왕은 834년 동남아지역 특산품인 ‘남해박래품’사용을 금지하는 교서를 내렸다. 호화사치품이 홍수처럼 밀려들면서 신라인의 예절이 참담해지고 미풍양속이 파괴되는 가운데 불가피하게 단행한 조치였다.
 일부의 무분별한 사치가 사회에 던지는 파장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바 없다. 그렇다고 왕조시대에서처럼 똑같이 이를 일일히 규제하는 법률을 만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돈을 버는 일에 쏟는 높은 관심과 정열만큼 돈을 쓰는 데에도 깊은 헤아림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