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서울대 반대-연세대 득세

국어학 대립 해방전부터

상대측학맥 원조 깎아내려

후배들 논문 참고문헌 상대방 배제

 현행 국어 표기법은 최근 한자병용 파동에서 볼수 있듯 크게 그 흐름이 한글로만 하자는 한글전용파와 필요한 때에는 괄호속에 한자도 넣어주자는 한자병용파로 갈라져 있다.

 그런데 모 아니면 도 식으로 격한 대립을 벌이고 있는 이들 두 흐름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상하게도 특정 학맥과 만나게 된다.

 한글전용운동의 진원지격인 한글학회를 보면 허웅 회장과 김석득 명예교수를 비롯해 연세대 혹은 그 전신인 연희전문 출신들이 득세하고 있다.

 반면 한자병용파에는 뚜렷한 학맥 특징을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현재 국립국어연구원장인 심재기 교수와 송기중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 인맥이 중추를 이루고있다.

 우리 학계에서 학맥과 인맥을 따지는 풍토가 유별나고 또 이 때문에 학문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결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어학 분야에서의 학교대립은 특히 유명하다.

 두 학교 국어학의 대립은 그 기원이 이미 해방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글전용파 운동의 뿌리가 한결 김윤경, 위당 정인보와 함께 연희전문에서 교편을 잡았던 외솔 최현배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금 한글전용의 기수역할을 하고 있는 허웅 한글학회장과 김석득 명예교수는 모두 외솔에게서 배웠다.

 외솔이 얼마나 순한글 운동에 집착했는 지는 명사(名詞)니 동사(動詞)니 하는 문법용어를 이름씨니 움직씨 같은 순 우리말로 바꾼 것은 물론 비행기조차 아예 「날틀」로 바꾸고자 했던 데서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서울대 국어학과는 그 학맥을 일제하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까지 됐던 일석 이희승과 이숭녕 박사에게서 찾고 있다.

 물론 일석과 이숭녕 박사가 한글을 좋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상대적으로 한자에 대해 관용적이었다.

 지금 서울대를 나온 출신들이 한자병용을 주창하는 중추를 이루고 있는 것도 이런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아무튼 자존심에서 비롯된 이들 두 학교 국어학의 대립은 때로는 감정적으로 치우쳐 심지어는 『일석은 친일파였다』느니, 『외솔은 일제 이론을 그대로 베꼈다』느니하는 따위로 상대측 학맥의 원조(元祖)를 깎아내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또 선배들의 이런 악감정은 후배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연세대 석.박사 논문의 참고문헌에 일석이나 이숭녕 박사의 저서가 등장하지 않았고 반대로 서울대 논문에 외솔이나 한결의 책이 인용되지 않았다.

 상대방을 배제하는 이런 전통이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연대 출신들이 한글학회에 포진하고 있는 반면 서울대 출신들은 국립국어연구원이나 국어연구회 같은 학회를 장악하고 있으며 또 국어학 전문 출판계에서도 「B사는 연대, T사는 서울대」라는 등식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비교적 젊은 40대의 서상규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는 『요즘들어 두 학교의 대립은 거의 없어졌으며 또 외솔이나 일석의 논문이나 저서를 인용하는 사례가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