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와 ‘질투는...’의 비범함
 ‘좋은 영화’에는 대체로 우리 네 인간들의 삶의 단면 내지 조건을 사고·성찰하게끔 하는, 그럼으로써 관객들에게 보다 높은 층위의 재미와 감동, 각성 등을 안겨주는 힘이 담겨 있다. ‘그녀에게’(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나 ‘질투는 나의 힘’(박찬옥)이 그런 좋은 영화들이다.
 둘은 어떤 사랑을 보여준다. 장르적으로 말하면 둘 다 통속적 러브 스토리요 멜로드라마인데, 그 사랑을 보여주는 방식이 진정 비범하기 짝이 없다. 평론가로서의 거리감을 단념하고 내 속을 그대로 드러내자면, 그 비범함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다. 평론가들이 극찬하는 영화들이 흔히 그렇듯, 그렇다고 골치 아프거나 재미없겠지, 지레짐작하진 말 것. 단언컨대 그 정반대니까.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타임 지가 2002년 최고 영화로 선정했으며 아카데미 회원들이 올 제75회 오스카 각본상을 안겨준 사실에서도 엿보이듯, 우선 ‘그녀에게’는 일반 대중 관객들을 움직이고도 남을 보편적 매력으로 넘쳐난다. 영화를 열고 닫는 독일 출신의 세계적 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두 ‘춤 극’(Tanztheater) ‘카페 뮐러’와 ‘마주르카 포고’에서 맛보게 될 가히 환상적이라 할 시청각적 감흥하며, 한마디로 심금을 울리는 멋진 음악들, 흠잡을 데 없는 역동적 편집 리듬, 그리고 ‘정’과 ‘동’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네 주연 배우들의 열연 등등.
 아니, 이런 빛나는 영화적 덕목들을 다 제쳐 두고 그저 이야기에 몸을 싣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서는 흔치 않은 영화적 체험을 만끽할 성싶다. 식물인간이 되어 병상에 누워 있는 두 여인-그 중 한명은 전도유망한 발레리나였고 또 한명은 인기 가도를 달리던 투우사였다-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두 사내, 극히 대조적 외모·성격이나 외로움이란 공통점을 지닌 두 남자 이야기.
 아마도 영화가 제시하는 사랑과 소통의 형태에 적잖은 충격과 감동을 받게 될 게 틀림없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란 표현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영화가 어디 또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녀에게’의 사랑이 너무나도 헌신적·집착적이어서 변태적 혹은 성(聖)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면, 한편 ‘질투는 나의 힘’의 사랑은 제목이 시사하듯 지극히 세속적이며 엉뚱하다. 애인들 빼앗긴 데 대한 질투로 그 애인이 사랑하는 중년 남자(문성근 분)가 편집장으로 있는 출판사에 취직하는 한 젊은 남자(박해일)를 축으로 전개되는 상투적 3각 관계 이야기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영화의 속내는 하지만 결코 범상치 않다. ‘생활의 발견’ 등의 문제작가 홍상수에 버금가는 비범함이 살아 숨쉰다. 냉소를 극복했다는 점에선 오히려 그를 능가하기도 한다. 깊고도 오랜 인간에 대한 사고와 관찰에서 가능했을 감독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기란 여간 어렵지 않을 터이다. 나처럼 감탄하진 않는다 하더라도….
 
  전찬일(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