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졸업직후 우연히 사촌형이 근무하는 여주 도자기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었지요. 자기 위에 밑그림을 그리는 회화과 부서였는데 그 그림들이 한순간 저를 매료시키더군요. 설렘섞인 감동이었습니다.』

 도예가 손원모씨(42ㆍ벽전도예 대표ㆍ인천시 서구 경서동 1의 8 ☎562-1656)가 지금까지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다. 그 길로 손씨는 사촌형을 졸라 입사를 하게 됐고 지금까지 20여년을 도자기와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어려서부터 그에게는 흙과 가마, 옹기가 친근한 일상이었다. 조부부터 이어온 옹기굽는 일은 부친대에도 이어져 그의 사촌중 여덟형제나 관련업에 종사, 이제는 아예 도자기 집안이라는 내력이 붙었다. 부친의 일이 어릴적 내내 힘든 작업이라는 기억으로 새겨져 오히려 스스로는 도예가 길을 택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다. 그러나 물려받은 잠재된 기질은 한순간 손씨를 돌려놓고 말았다.

 『예술이라는 것이 이치는 같지만 특히 도자기는 정말로 좋아해야 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작품이란 두번 다시 없는, 창조의 결정체와 다름아니지요. 끊임없이 형태를 연구하는 것이 때로는 고달픈 숙제처럼 여겨지지만 머리 속에서 만들어 낸 작품을 손으로 빚어낸다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인 일입니다.

 초벌구이를 한 도자기위에 밑그림 그리기로 시작한 도예인생. 당시 여주는 이제 막 도자기도시의 조짐을 지니고 백자 가게가 한 두집 생겨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의 남다른 자질은 벌써부터 소문으로 번져나갔다.

 게다가 한국전통예술제에서 금상과 특선, 단원예술제에서 은상 등 전국단위 굵직한 대회에 출품한 작품들이 잇달아 상을 받음으로써 그의 실력은 공인을 받게 된다.

 이후 손씨는 고향 인천으로 회귀, 서구 경서동에서 그의 호를 딴 「벽전도예」를 내걸고 본격적으로 도자기 굽는 일을 시작했다. 토련기속에서 뽑아낸 흙 반죽을 보면 벌써부터 마음이 부유해지는 것 같다는 손씨. 물을 내리면서 자기를 만들고, 가마에서 초벌구이를 하고, 정성스레 밑그림을 그린 뒤 유약 바르기, 그다음은 1천2백50<&27837>에서 10<&27829>12시간동안 재벌구이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완성된 작품을 얻을 수 있다.

 『도자기에 있어 조형적 가치로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유약입니다. 유약은 화가가 밑그림 위에 작품을 마무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형형색색의 물감과도 같은 것이지요. 혹은 시인이 사용하는 시어나 작곡가가 사용하는 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위에 바른 유약이 불에서 녹으면서 그안의 그림이 적절한 색으로 비쳐 드러나게 되는 것이 그 원리로 어떤 유약을 선택하느냐가 바로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청자의 경우 황토를 주원료 만든 유약을 사용해야 하고, 백자는 장석류 유약을 발라주어야 한다. 자칫 잘못 고른다면 의도대로 작품을 얻을 수 없어 한가마 전부를 버려야 하는 경우가 생기고 만다.

 손씨가 요즘들어 몰두하는 분야는 생활공예. 즉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데 쓸모있고 아름다운 자기를 만들어 내는데 도자기의 陶와 藝와 精이 제품 자체에 나타나 하나의 뜻있는 공예품으로 자리를 지킨다면 이것이 생활속에서 우리의 전통을 살려 내는 길이라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래서 손씨는 오는 4월에 열리는 공예인협회 회원전에서 생활자기를 출품할 계획이란다. 현실에 맞는 전통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조형미를 갖춘 반상기 2세트를 선보이고 싶다는 의지가 깔려있다.

 『완벽한 작품은 어디에도 없지요. 정성으로 빚어낼 때마다 매번 느낌이 달라지니까요. 내가 만든 작품이 아주 오랜시간 후에까지 보존 되어질 가치가 있다면 그이상 더 멋진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김경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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