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강하진선생(56)이 그림작업에 전념하기 위해 교직(인천여고)을 떠났다. 가장으로서 수입을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과, 「좋은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화두사이에서 오래 고뇌해오던 끝에 어렵게 내린 결정이다. 3월부터 강선생은 면벽참선(面壁參禪)하듯 그만의 작업실에서 오로지 천을 마주한 채 작업에 전념할 것이다.

 인천에 살고 있지만 강선생은 지역작가라기보다는 중앙에서 더 잘 알려진 한국화단의 중진이다. 강선생은 70년대 초 생소하던 「현대미술」 개념을 국내에 도입해 과감한 작품을 선보였던 일련의 작가군 중심에 있었다. 지금은 일반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오브제(여러 사물ㆍ물질들)를 이용한 설치미술 등은 매우 낯선 것이어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다 80년 30~40대 인천지역 작가들로 그룹 「현대미술상황」을 결성해 어려움속에서도 매년 전시를 개최하며 현대미술운동을 이끌었다. 그가 현재 인천 비구상계열의 중심축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강선생은 천을 사용하는 독특한 작가다. 이리저리 변화가 자유로운 변용성과 인위적 냄새가 나지 않는 자연스러움에 이끌려 선생은 캔버스라는 기성품을 배제하고 수십년간 오로지 각종 천위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나 그 그림은 형태가 없다. 칠하고 덧칠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추상적 화면, 그의 말을 빌자면 『물성(천과 같은 사물이 지닌 특성)과 내 표현의지가 적절히 만난 상태』에서 멈춘 그 화면이 그의 작품이다. 무채색계열의 어두운 색상과 대형 천을 주로 사용해 관객을 압도하지만 그의 작품은 볼수록 그 자연스러움에 이끌리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친자연주의」를 표방하며 「자연율」 연작을 내놓았던 그는 앞으로도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장생활이외 남는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끊임없이 그림작업에 매달려온 그의 열정, 타협없이 원칙과 원론에 입각해 외길을 걸어온 고집은 국내 화단에서도 유명하다. 그런 만큼 작업에만 몰두하겠다는 그의 결정에 거는 기대가 크다. 내년쯤 우리는 산고를 겪고 탄생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을 듯싶다.

〈손미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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