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중 약대이산이라고 해서 알아들을 사람 별로 없겠다. 수년전만 해도 고로들중에는 더러 아는 분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지형도 지명도 사라졌다. 약대이산이란 약대인산의 와음이며 오늘날 성공회가 있는 내동 언덕의 홍예문으로 향하다 자유공원으로 돌아 올라가는 일대였다. 그리고 약대인이란 인천에서 성공회 선교를 시작한 미국인 선교사 랜디스를 높여 부르는 별호였다.
 랜디스가 제물포항에 도착한 것은 1890년9월19일 가을 햇살이 갯벌에 눈부시게 비치는 월요일 아침이었다. 며칠후 그는 큰 셋집을 얻어 이사하여 방 하나는 기도실로 두개의 방은 진찰실과 양국으로 사용케 할수 있었다. 이곳이 오늘날 성공회 내동교회이며 인천 최초의 병원이라 할수 있다.
 지난 2001년 발간한 성공회 내동교회사에 의하면 랜디스는 그해 12월26일 정식으로 성루가병원을 개원하고 있다. 그리고 개원한 이래 3개월간의 통계를 보면 환자 34명 약국을 찾은 건수 76회 방문진료 25회였다. 전혀 의료의 시혜가 없던 시절 그에게서 혜택을 입은 시민들은 그를 약대인이라고 했다. 약에다 타인에 대한 경칭인 대인을 붙여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랜디스는 1898년4월 32세의 젊은 나이로 이국땅에서 요절하고 만다. 송림동의 작은 마을에 살면서 장티푸스에 감염되었던 것이다. 당시 일간지이던 매일신문은 그의 죽음을 4월22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영국교회에서 교중일하던 미국 의원 랜디스라 하는 사람이 본월 16일에 인천항에서 죽어 19일에 제물포항에서 장사지냈는데 동일에 각국 공사관에서 조상하는 예로 반기를 달았더라”
 장례가 있던 날 천둥과 번개가 몹시도 심했다고 하는데 그는 지금 인천시청학동 외국인묘지에 잠들어있다.
 성공회 교회앞 건물신축 문제로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지상 8층의 설계승인을 두고 교회측은 문화재를 가리운다는 주장이다. 건물의 위치로야 최적이나 교회로는 치명적이다. 결자해지의 노력으로 원만한 수습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