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색과 지역감정
인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초빙교수 김준기
 이제 우리는 21세기에 새 대통령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역시 지역감정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국민통합이라는 슬로건이 무색할 정도로 지지후보가 일정 지역에서 극명하게 갈라진 현상 앞에서 한편으로 이러한 상황이 새 대통령의 의지로 충분히 타파될 수 있을 것이라는 커다란 기대감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러나 비록 한쪽 지역에서의 몰표가 오히려 지역감정을 타파하고자 하는 염원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현상에 우려를 금치 못하는 것 또한 작금의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지역감정과 지역색을 같은 의미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지역색과 지역감정은 분명히 다르다. 즉 지역감정을 타파하는 것과 지역색을 타파하는 것은 절대로 같을 수 없다. 지역색이란 말 그대로 어떤 지역이 가지고 있는 그 지역만의 고유한 색깔이고 이 색깔은 곧 고유한 지역문화를 의미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역색을 없애는 것을 마치 지역감정을 없애는 방법으로 착각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지역문화는 지역감정과 전혀 관계없이 보존되고 육성되어야 한다. 그것이 지역민들의 자신의 지역문화에 대한 애정에서건 아니면 국가적 또는 정책적 차원에서건 말이다. 국가를 포함한 모든 조직은 다양성에서 조직운영의 에너지가 생성된다. 우리가 획일을 경계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획일은 결국 전체를 죽이고 만다. 물론 색갈이 다르면 다른 색깔간에 긴장이 유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정치는 그동안 이러한 긴장을 정치권력적 갈등으로 전용하여 정치적으로 악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지역색의 타파를 지역감정 타파의 교두보적인 방법으로 인식해 왔다.
 다양성은 자칫 조직의 혼란과 무질서, 와해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주체는 역시 정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문화뿐 아니라 모든 것이 다양성의 조화에서 발전과 건강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겪고 있는 지역갈등, 계층갈등, 성갈등, 세대갈등, 노사갈등, 이념갈등은 대립과 투쟁적인 갈등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갈등을 조화와 균형을 통한 발전적인 갈등이 아니라 한쪽이 어느 한쪽을 적으로 인식하는 타협 불가능한 갈등관계로 보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갈등은 이것이 의도적으로 조작된 것만 아니라면 화해와 발전을 그 가능성으로 배태하고 있는 갈등이다. 그리고 더구나 지역색간에는 이러한 갈등이 존재해서도 안되고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제 문화의 우열을 판단하고 그러한 판단이 통용되는 유치찬란한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고 판단된다.
 문화의 발전은 다양한 문화의 생성과 보존 그리도 타문화와의 적절한 긴장과 조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단지 생각만으로라도 동편제가 더 우수한가 서편제가 더 우수한가 하는 판단은 더 이상 소모적일 수밖에 없고 이제 불필요하다. 특히 정치적으로 악용되어온 지역감정과 결부해서는 더욱 그렇다. 20세기 들어 우리가 만든 세계적인 한국문화는 거의 전무하다. 석굴암과 팔만대장경, 청자와 백자 등으로 평가해온 선조들의 그 큰 문화적 역량 앞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후손들에게 평가받을 것인가 반성해 봐야 한다.
 전체의 다양성을 없애는 것이 전체의 생명력을 없애는 것이듯 지역색을 없애는 것은 결국 지역문화를 없애는 것이고 이는 결국 가장 한국적인 문화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세계는 다원화를 향하여 치닫고 있다. 이러한 시대 조류 앞에서 더 이상 지역감정 타파가 지역색 타파 주장으로 이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국민화합은 정치적 화합보다 문화적 화합이 선행되어야 한다.
 밧줄이 강한 힘을 유지하는 것은 그 밧줄을 이루고 있는 한올 한올의 끈이 서로 엇갈려 함찬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적인 선진문화도 바로 한 지역 한 지역의 개성적이고 개별적인 문화가 함께 어울어져서 형성된다는 엄연한 진리를 새 대통령을 포함하여 국민 모두가 가슴 속에 진지하게 새기는 한해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