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의 빨간 외투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거리의 사람들도 저마다 목도리며 털장갑으로 단단히 몸을 감싸고 있네요. 이런 추운 날씨에 빠뜨릴 수 없는 것, 바로 따뜻하고 포근한 외투 한 벌이 아닐까요. 요즘은 해가 바뀔 때마다 유행 따라 외투나 두툼한 점퍼 등을 몇 벌 씩 사서 갖춰두고 입는 이들이 더 많아졌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웬만한 겨울 옷 한 벌 장만하려면 미리 시장에 가서 구경도 해보고 적어도 몇 년은 입을 수 있게 넉넉한 걸로 골라 주시는 어머니와 작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었지요.
 서점에서 ‘안나의 빨간 외투’라는 이 그림책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나 예쁜 빨간 빛깔에 마음을 뺏겨 아껴 입었던 어릴적 외투가 생각나 단숨에 읽어내려 갔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이차 대전 후 생필품도 부족하고 사회가 아직 안정을 찾을 수 없었던 가난의 시절에 안나라는 여자아이가 새 외투 한 벌을 갖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잔잔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돈도 없었지만 돈을 주고 사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외투 한 벌, 그 외투를 만들기 외해 안나와 엄마는 양을 치는 농부 어저씨, 물레질하는 할머니, 옷감짜는 아주머니, 재봉사 아저씨를 차례차례 찾아가서 그분들의 수고에 대신해 안나네 집에 있던 소중한 물건들을 드리게 됩니다. 양털이 자라고, 실이 자아지고, 다시 그 실을 물들이고, 옷감을 짜고, 마침내 예쁜 황금색 단추를 단 빨간 새 외투가 만들어지기까지 꼬박 일년의 시간을 기대하며 그 과정을 지켜보는 안나.
 새 외투를 갖게된 그 해 크리스마스에 안나는 외투가 안나에게 오기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많은 분들을 초대해 조촐한 파티를 엽니다. 아마도 전쟁의 아픈 기억을 떨어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에게 이 파티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과 결실을 꿈꾸게 하는 최고의 파티였겠지요.
 책의 첫 장면에 작은 푸른 외투를 입고 있던 안나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어느새 한결 성숙해진 소녀의 모습으로 행복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털을 준 양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안나는 일 년 동안의 기다림 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깨닫고 배웠을까요. 모든 것이 풍요롭고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대부분의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이 책이 작은 것의 소중함과 기다림의 의미, 자신의 손으로 땀흘리며 일하여 얻게 되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 줄 수 있을까요.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며 이 겨울, 따뜻한 마음의 외투 한 벌을 얻게 된 것 같아 슬며시 미소를 짓습니다. 책장을 덮으며 아들녀석도 한마디 하는군요. “안나 외투 정말 따뜻하겠다.” 그렇죠? 사랑이 듬뿍 담긴 외투니까요.
 (사)어린이 도서연구회 부평 동화읽는 어른모임 회원 정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