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餘滴), ‘붓끝에 남은 먹물’이라는 뜻이다. ‘무슨 일이 끝난 다음의 남은 이야기’라는 풀이도 있다.
 수원을 중심으로 경기도, 서울, 대전지역의 작가들이 모여 만든 여적회(餘滴會)라는 모임이 화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다 쓰고 남은 먹물에 또다시 붓을 담가 화선지 위에 새로운 붓질을 옮겨 놓는다’는 말 뜻 그대로를 화폭에 옮기는 중견작가들의 모임이다.
 수묵을 통한 실경산수 위주의 작품들을 전통적 기법에 바탕에 두되 현대적 새로움의 접목을 시도하는 작업을 벌여 온 이들이다.
 여적회 회원인 강상복·김충식·박요아·이장원·임갑재·최광옥·최길순·최동춘 등 한국화가 8명이 지난 8일부터 수원미술전시관에서 작품전을 열고 있다.
 제1, 3전시관에서 ‘자연·바라보기’를 제목으로 ‘나무를 통해 본 자화상전’을 오는 21일까지 펼쳐보일 예정이다.
 우리 산하에 있는 나무를 주제로 한 40호짜리 작품과 소품 3점 등 모두 32점이 전시 중이다.
 “나무는 특이한 이미지를 주거나 독특한 미감은 없지만 인간생활사와 더불어 가까이 있기 때문에 동서양화 회화소재로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일상속의 발견’을 화두로 이번 전시회의 주제를 풀어간다.
 나무라는 소재는 특히 회화의 ‘조형적 요소와 하모니’에 있어서 수직적 조형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연스럽게 많이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자연스러운 모티브를 가지고 ‘자연바라보기전’ 참여작가 각 개인의 정신적 사유체제와 개성적 표현기법을 자유스럽게 발표하게 됐습니다”.
 강상복 씨는 눈속에 파묻힌 나무둥치를 통해 거칠고 가파른 인생의 굴곡을 그리고 있으며 작품 서설에서는 단아한 전경으로 안정감을 준다.
 수원여대와 경기대 등에 출강하고 있는 김충식 씨는 강인한 생명력의 근원인 ‘뿌리’를 표현하는데 주력하고있으며 박요아 씨는 겨울숲에 소복한 눈과 화선지의 여백을 먹의 농담과 필치를 통해 절묘하게 조화시켜 여유로움을 던져준다.
 한남대 미대 교수인 이장원 씨는 단풍나무의 화사함 속에서도 내면의 세계로의 침잠을 시도하고 있다. 임갑재 씨는 부러진 가지의 흉터를 간직한 채 세월과 함께 완숙해지는 나무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경기대 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최광옥 씨는 짙푸른 소나무의 기개를, 채길순 씨는 고적한 정적을 지키는 소나무의 의연함을, 최동춘 씨는 짙은 먹과 번짐을 통해 구상의 경계를 벗어난 비구상으로의 새로움을 시도하고 있다.
 전업작가에서 현직 교수까지 다양하게 구성된 여적회는 그들만의 농익은 작품세계를 자랑하지만 겸손함과 열정을 깊숙히 간직하며 첫 화폭을 대할 때 그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들은 지난해 첫 전시회 때 700호짜리 대작을 공동작업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수묵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작품성향 탓에 진부함, 현대적 조형미감 등 부족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또다른 미감으로 지향하는 작가철학과 예술성을 작가 개인이 추구하는 작품세계에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와함께 이들은 “감동적이고 창의적인 작품 창작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연구하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는다.<정찬흥기자>chjung@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