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년회 그물에 걸린 물고기
경기도 홍보기획사무관 이 강 석

 어린 시절, 동네 어디에나 맑은 물이 흐르던 그 시절 동네 청년들이 그물을 들고 나서면 동작 빠르게 따라가야 한다. 형들은 오늘 고기를 잡으러 가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 동네 사람들의 몸속에 칼슘이 부족하다는 신호가 온 것이 분명하다.
형들이 준비한 장비들을 살펴보자. 우선 찌그러진 양동이와 대나무 막대 2개와 망으로 구성된 그물 하나가 전부다. 개천을 따라 내려가면서 고무신을 벗고 바지를 정강이까지 걷어 올리면 준비는 다된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고기잡이가 시작된다. 개천이 휘어져 둑을 파고 들어가는 곳에는 긴 풀이 함께 어우러져 물살에 흔들리면서도 억세게 버티고 있는데 이곳이 바로 그물을 대는 포인트다. 검정 고무신을 양손에 든 다리 짧은 형은 아주 빠르고 능숙한 발놀림으로 고기를 몰아가고 키큰 형 둘은 장대처럼 서서 장대를 잡고 타이밍을 재고 있다.
그물을 드는 타이밍에는 대개 2가지가 있는 것 같다. 그곳에 사는 물고기 종류가 그물을 드는 타이밍을 결정하는 것이다. 보통의 붕어나 미꾸라지를 노릴 경우 그물을 올리는 일은 여유가 있고 고기잡기에 실패해도 그물담당이 책망을 듣지 않는다. 고기를 모는 ‘숏다리’ 형이 얼마나 빠르게 고기를 몰아왔느냐가 성공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종이 피라미인 경우에는 역할이 다르다. 숏다리 형은 그저 두세번 축구장에서 공 못차고 헛발질하듯이 물을 서너번 튀기기만 하면 된다. 고기를 잡는 일은 장대 형의 몫이다. 즉 얼마나 빨리 그물을 올리느냐가 성공의 지름길이다. 숏다리 형이 물을 튀기는가 하는 순간에 ‘롱다리’ 형은 그물을 올려야 한다. 빠를수록 그물 위에서 은색의 찬람함을 뿜어내는 피라미의 숫자는 많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여러 마리 붕어 틈에 끼어 그물에 걸리는 피라미는 얼마나 게으른 것이며, 피라미와 함께 걸려드는 붕어는 또한 얼마나 동작 빠른 것인가. 하지만 그 물속에 있는 물고기가 다 잡히는 것은 아니다. 다음해에도 물고기는 잡을 수 있었으니까.
이러기를 두어시간 보내면 발바닥은 하얗게 불어서 둥근 자갈에 고르게 갈리면서 부드러워지고 손바닥과 손가락 지문은 할아버지 이마처럼 굴곡이 생긴다. 이제 고기잡이는 마쳐야 할 시간인 것이다.
양동이에 물을 반쯤 채워 잡은 고기가 숨을 쉬도록 배려하면서 동네로 돌아오면 다른 형들은 무쇠솥에 물을 끓이고 있다. 그 옆에 준비된 재료를 살펴보면 국수 한관, 라면 3개, 굵은 파 5개, 계란 3개, 조미료 등이다.
그런데 또 하나 준비된 것은 고운 소금과 굵은 소금이다. 고운 소금은 추어탕에 간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굵은 소금은 용도가 다르다. 우선 잡아온 고기를 분류하는데 붕어와 피라미는 비늘을 따내 손질한다. 이어서 미꾸라지는 양동이에 담는다. 싱싱한 미꾸라지들은 양동이 안에서 서로 어지럽게 윤무(輪舞)를 한다. 이때 굵은 소금이 들어간다. 소금기를 싫어하는 미꾸라지들은 서로 몸을 비비고 몸속의 진흙을 토해내는 것이다. 모든 재료가 들어간 무쇠솥에서 김이 오르면 동네 어르신들이 오신다. 풀밭에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다. 이쯤이면 시간은 오후 2시가 넘었다.
이제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다. 많은 이들이 오전 2시를 넘겨 망년회를 한다. 폭음을 하고 차를 운전하면 정말로 생명과 재산을 포함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데 경찰의 음주단속 방법에는 투망식도 있고 저인망식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요즘 경찰의 음주단속에는 붕어도, 피라미도, 미꾸라지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단 그물 앞에 걸리면 왼쪽으로 가도 경찰이 있고 오른쪽에도, 뒤편에도 늘 단속경찰은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경찰의 음주단속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철창’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