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다르크’ 지역감정으로부터 민주주의 구하다
▲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하남시갑 후보가 개소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4·10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유권자들의 후보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인천일보는 하남시갑·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학창시절과 정계 입문 과정 등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본문 내용은 후보자의 자료 및 사진 제공으로 구성된 만큼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

▲ 추미애 후보가 남편, 자녀들과 촬영한 사진.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하남시 갑 국회의원 후보는 1958년 경북 달성군(1995년 대구광역시로 편입)에서 가난한 세탁소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자신 또한 넉넉하지 않았기에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는 정치적 신념이 자리잡았다고 한다.

대학 동기인 남편은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하다.

결혼 당시 지역감정이 극심할 때라 전라도·대구 커플은 가족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끈질긴 설득으로 7년이 연애 끝에 결혼에 성공해 세 아이의 엄마가 된다.

▲ 추미애 후보의 판사 시절 모습.

한양대 졸업 후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당시에는 여성이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서 300명 합격자 중 여성은 추미애 후보 포함 단 3명에 불과했다.

최초의 여성판사 출신 국회의원,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 여성 여당대표를 역임하며 성별의 벽을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5년 봄,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은 공안정국을 만들어 아무 문제없는 책들을 불온서적으로 만들고 압수수색했다. 전국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했지만 유일하게 추미애 후보만이 영장을 기각했다고 한다.

▲ 고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한 사진.

지역감정을 극복한 결혼으로 호남 며느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대중 대통령 후보시절 대구의 DJ유세단장으로 활동하며 지역감정을 허물기 위해 노력했다. 이때 ‘추다르크라’는 별칭을 얻었다.

1995년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에게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비레대표라는 쉬운 길을 거절하고 지역구 출마를 고집했다. 훗날 여성 최초 5선 국회의원(15·16·18·19·20대)과 제2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재인 정부 시절 제67대 법무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 추미애 후보가 민주당 당대표에 당선된 뒤 기뻐하고 있다.

삼성이 건네고 간 골프백에 든 현금을 그대로 돌려준 일화는 유명하다. 이건희 회장은 ‘추미애가 삼성의 돈을 받지 않았다’고 직접 말했을 정도다.

제19대 대통령선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2018년 재보건선거 등 당대표로 치룬 모든 선거에서 전승했다. 민주당 최최로 임기를 다 채운 당대표이기도 하다.

/하남=이종철기자 jclee@incheonilbo.com

▲학력 및 경력

- 한양대학교 법학과 졸업경력

- (전)더불어민주당 당대표

- (전)제67대 법무부 장관

- (전)15·16·18·19·20대 국회의원

- (전)민주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