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다”라는 말이 있다. 영국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이 한 말로 전해지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기보다는 입을 닫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게 더 지혜롭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고려말 충신 최영 장군은 말하기를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했다. 그러면 삼단논법에 따르면, 침묵은 금이고, 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하면, 결국 침묵하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 지금 세상이 그렇다는 말이다.

개인에 대해서는 침묵도 좋지만, 사회 전체와 관련해서 침묵이 과연 금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문제에 대한 집단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언의 항의인지, 무언의 동의인지, 각기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사회에 문제가 있는데 모두 침묵하는 것은 해를 끼치고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잘못된 현상을 정설로 받아들이는 데 일조하여 집단착각을 불러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옛말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잘못된 관습은 지속하고 사회는 발전하지 못한다. 결국 집단지성이 집단 무지성으로 되어 사회를 집단착각으로 몰고 간다(토드 로즈 <집단착각>에서 인용). 그래서 할 말은 해야 한다.

얼마 전에 지하철을 탔는데,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큰 소리로 떠들며 전화를 했다. '어휴 상식이 없네'하고 있었는데, 어떤 젊은이가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지하철에서 공중도덕을 지켜 주세요”하고 얘기를 했다. 한바탕 말싸움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전화를 한 사람이 머쓱해 하며 통화를 끊었다. 침묵했던 필자가 부끄러웠다. 사람들이 한마디 해야 하는데, 모두 침묵으로 일관하니 지하철·버스 등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전화를 해도 무방한 것으로 생각한다. 불편한 침묵이다.

침묵은 금이 될 수도 있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 집단침묵은 특히 잘못된 제도, 악습, 부당, 부조리를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작용할 수 있다. 중세 시대 마녀사냥, 면죄부에 대한 집단침묵은 집단광기로 이어졌으며,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에 대한 침묵은 홀로코스트 대학살의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도 사회적 약자, 성 소수자, 외국인 근로자 차별에 대한 대중의 침묵은 인권침해와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집단침묵은 금이 아니다. 부당하고 잘못된 현상을 보면 목소리를 내야 사회가 바뀌고, 부조리가 사라지며, 희망이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러니 목소리 낼 필요가 있으면 침묵하지 말고 말을 하자.

▲김천권 인하대 명예교수∙인천학회 고문.
▲ 김천권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김천권 인하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