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식 H&J산업경제연구소장.
▲ 이완식 H&J산업경제연구소 소장

4월10일 열리는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는 총선 승리를 위해 세몰이에 열중한다. 선거를 제외한 모든 이슈는 총선에 묻힐 게 뻔하다. 선거 결과가 어떻든 윤석열 정부는 3년이 남았다. 총선이 삼켜버려 관심의 뒤편에 있는 우리 경제는 벼랑끝에 서있다. 경제 정상화가 '발등의 불'이다. 선거가 끝났다고 그냥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크게 위축됐지만 완연한 상승세다. 미국 뉴욕증시 각종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는 인플레를 걱정하면서도 금리완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은 러-우크라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각종 지표가 회복세다. 미국의 강력한 제재를 받는 중국도 바닥을 친 모양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떤가. 우리 무역수지는 얼마 전에야 반도체 시장 회복으로 흑자로 전환됐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불안하기가 그지없다. 교역 규모 비중이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은 최대 흑자에서 적자로 반전됐다. 다시 흑자로 반전시키지 못하면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다. 러시아는 무역량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 숫자는 계속 줄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수출 주력품목은 반도체를 필두로 자동차, 배터리, 가전 등 정보기술(IT)과 제조가 결합된 산업이다. 전력소비가 많고 에너지 가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글로벌 공급망과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대두된 RE100(재생전기 100%)은 넘어야 할 산이다.

글로벌 공급망 문제는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공급망은 우리 경제의 주축인 첨단산업과 불가분의 관계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완제품을 만들려면 소재와 부품, 장비의 원활한 수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예를 들면, 과거 글로벌 공급망은 약속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국가별로 역할 분담을 했다. 중국은 소재·부품을 미국과 일본은 장비를 공급해왔다. 우리나라는 소재·부품·장비를 조달해 완제품을 수출하는 형태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대통령의 중국 규제를 기폭제로 균열이 생겼다. 코로나19와 러-우크라 전쟁은 기름을 부었다. 산업 원자재 뿐만 아니라 에너지, 식량 등 전방위적으로 확대된 글로벌 공급망 질서는 사실상 깨졌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커다란 위기를 맞은 셈이다. 원자재를 수입해 완성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산업구조다 보니 자원 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을 만들어 자국 중심으로 산업재편을 꾀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 등 정부 주도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일본은 제조업 권토중래를, 대만은 일본과 협력해 대한민국 견제에 온힘을 쏟고 있다. 미국은 한·미·일로 이어지는 동맹국 관계를 강조한다. 중·러는 대한민국과 관계 단절을 유보했지만 냉랭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어서 난감할 수밖에 없다. 공급망 문제는 반도체에 그치지 않는다. 다른 첨단산업 원자재도 중국 의존도가 높다. 이래저래 사면초가다.

공급망 문제 해결은 기업들만 나서면 한계가 있다. 자원 수급은 국가간 이해가 첨예하다. 기업도 나서야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인도는 미국과 친밀도를 유지하면서도 러-우크라 전쟁에서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렸다. 견원지간인 중국과 파키스탄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국가 이익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공급망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 공급망 문제는 국가간 이익이 결부돼 있으니 '몰빵 외교'는 자해행위와 다름없다. 멀리 고려시대 '서희 외교'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가까이 인도의 '실리 외교'를 배워야 한다. 벼랑끝에 선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이완식 H&J산업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