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영화 '파묘'를 봤다. 명당 묫자리 같은 음택풍수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터라 전체 설정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데, 영화 초반 김상덕(최민식)과 고영근(유해진)이 나누는 대사가 귀에 쏙 들어왔다.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으나 대충 이런 내용. 장의사 고영근이 묻는다. “조선시대부터만 따져도 묻힌 분들이 어마어마한데, 명당이 지금껏 남아 있을까?” 지관 김상덕의 대답. “다 없어졌다고 봐야지.” 내가 평소 생각해 본 적 없는 포인트다. 아하! 그렇구나! '명당 찾아 삼만리'의 허점을 단 한 방에 명쾌하게 드러난다.

우리나라 풍수의 '창시자' 도선국사는 전남 순천 승주의 운동산에 도선암이 창건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절이다. 그런데, 도선암의 지세는 풍수적으로 '호랑이 아가리[虎口穴]' 자리라 한다. '굶주린 호랑이가 먹이를 찾는 형세'여서 매우 불길한 풍수다. 더구나 내려다보이는 순천은 사슴의 지세여서 산의 기운이 순천을 잡아먹는 형국이다.

왜 이런 불길한 곳에 절을 세웠을까? 풍수가들은 도선국사가 그 자리에 절을 세움으로써 나쁜 기운을 막았다고 설명한다. 도선은 후손의 재물과 부귀영화를 위한 명당풍수가 아니라, 모자라거나 악한 지기를 채워주고 눌러주기 위한 비보풍수(裨補風水)에 힘썼다고 한다.

도선의 비보풍수는 고려 무신정권 때 나라에서 '산천비보도감'이라는 임시관청을 낳기도 한다. 전국에 사찰이 난립하여 지맥을 손상하고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나니, 비보사찰만 남기자는 최충헌의 상소가 전해진다. 비보풍수의 전통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관악산의 불기운을 막기 위해 대궐 앞에 해태를 세웠다는 이야기로 연결된다.

요즘도 간혹 현대식 비보풍수를 들먹이는 자칭타칭 '전문가'들을 만난다. 대체로 인테리어를 바꾸어 재물운·건강운 따위를 비보하라는 충고다. 그럴듯한 대목도 있고, 글쎄 싶은 부분도 적지 않다. 사실, 풍수와 인간사 길흉화복이 직결되는지 아닌지는 증명 불가 영역이다. 믿는 사람만 믿으면 된다. 하지만 믿더라도, 개인의 발복보다는 건강한 생태계를 지향하는 비보풍수 쪽이었으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다.

영화 <파묘>가 천만 관객을 넘겼다 한다. 1000만 명 이상이 보러 극장에 가게 할 만큼 대중의 심리를 파고든 영화라는 뜻이겠다. 영화의 코드에 대한 평가는 그 분야 전문가들이 다양하게 전개할 터이다. 다만 사족 하나 덧붙이자면, 나는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아하!' 포인트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영화라고 믿는다.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