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우리는 흔히 강화군을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부른다. 그만큼 역사적 유물과 유적 등 각종 문화재가 널리 분포하고 있어서다. 국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마니산 참성단을 비롯해 고려시대 몽골항쟁 당시 수도와 고인돌(지석묘) 등으로 말미암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여겨진다.

마니산(472.1m)은 한반도 배꼽 부위에 해당하는데, 생기처의 으뜸으로 꼽히며 신령스럽다고 알려진다. 참성단은 마니산 정상에 돌로 쌓은 제단이다. 유서 깊은 이곳엔 단군이 제천의식을 거행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적 제136호로 지정된 참성단에선 해마다 10월3일 개천절이면 제천행사를 치른다. 1953년부터 민족정기를 모아 전국체전 성화를 채취해 경기장의 불을 밝히기도 한다.

마니산 꼭대기에 서면 산·갯벌·바다가 함께 펼쳐진다. 해안선을 따라 쭉 들어선 서해 갯벌 너머론 아스라이 인천시내 풍경이 손에 잡힌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는 크고 작은 15개 섬으로 이뤄졌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강화는 '인천의 보물'로 일컬어진다.

강화는 한때 나라의 도읍이었다. 1231년 몽골이 침략하자 고려는 이듬해 천혜의 요새인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다. 1270년 개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38년 동안 강화는 고려의 수도였으며 항쟁의 근거지였다. 인류 역사상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아주 큰 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에 맞서 끈질기게 저항하며 자긍심을 지켜낸 민족은 그리 많지 않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하점면 부근리 강화지석묘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남한에서 제일 규모가 큰 탁자식 고인돌로, 세계 거석문화의 표상처럼 언급된다. 자연석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거나 무덤으로 이용했다. 강화엔 150여기의 고인돌이 풍성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예로부터 농경과 어업이 발달한 강화가 풍요와 번영의 땅이었음을 뜻한다. 강화는 이밖에 현존 국내 사찰 중 가장 오래된 전등사,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산 사고, 군 요새인 5진(鎭)·7보(堡)·54돈대(墩臺) 등 수두룩한 문화재를 자랑한다.

강화군은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 않다. 아울러 마니산이 좋은 기운을 품고 있다는 소문에 주말이면 수천 명의 등산객을 불러모은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강화군을 찾은 누적 관광객이 1735만명으로, 전년보다 3% 늘었다고 한다. 이들은 가족 단위로서 마니산·원도심·풍물시장 등을 주로 방문했다. 강화군은 역사·문화와 관련된 각종 유물 등을 잘 볼 수 있어 강화를 많이 찾는다며 올해는 관광객 2000만명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풍광이 빼어나고 청정하며, 개국의 희망과 국난 극복 의지가 서린 강화가 더 큰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응원한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