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창욱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상근부회장
▲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상근부회장

한국 사회가 끝없이 들썩거린다. 특히 안전·재난사고로 인한 파열음이 끝이 없다. 사무실이 경복궁 지역에 있다 보니 조금만 나가면 숱한 사고와 사건의 책임을 촉구하고 규탄하는 일들로 어지럽다. 업무로 경복궁역에서 인천 송도로 가는 길에 많은 생각이 오간다. 현장과 기억에서 사회적 약속과 책임이다.

먼저, 경복궁역에서 만난 에스컬레이터 수리 현장에서 본 일이다. 수개월 전에 에스컬레이터 역주행사고로 큰 인명 피해가 있었던 곳이다. 어느 날 3명이 붙어 수리하고 있었다. 두 명이 고치는 데 한 명은 한국인이고 한 명은 외국인이었다. 바로 앞의 또 다른 한 명은 감독직인 듯한 데 휴대용 야외 의자에 앉아 핸드폰 화면에 몰입해 있었다. 게임이나 문자놀이를 하는 듯했다. 아침 신문에서 보았던 중대재해처벌법의 확대 적용으로 소규모 사업장 사장들의 하소연 기사가 생각났다. '한눈파는 사이에 사고가 난다면?' 작년에 에스컬레이터 수리 중에 다쳤던 비명의 현장을 직접 본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감독자 방심으로 본인 회사와 일을 준 회사의 경영진이 범죄자가 될 지경이다. 잠시의 방심은 회사와의 계약과 사회적 약속의 위반이다.

다음은, 인천 송도로 가는 환승역에서 지하철 에티켓 광고를 보았다. 한 손에 커피, 한 손에 스마트폰에 집중하며 지나치다가 부딪칠 뻔한 사고가 소재였다. 지하철역만 아니라 복도, 길에서도 자주 보는 광경이다. 위험지역에서 눈길이 뺏길 때 혼자만이 아닌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사회적 약속에 대한 경고였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위험한 상황에서 문자 삼매경들을 자주 보았다. 사회적 약속이 너무 쉽게 무시되는 현장이 도처에 널려 있다.

마지막은 송도 지하철역에서 '아암도'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인천에서 장교로 복무할 때 아암도 지역 해안소대장이었다. 해안선 전방의 간첩 침투를 경계하는 일을 했다. 남들은 후방 근무라며 부러워했지만 전혀 엉뚱한 곳에 유혹이 있었다. 밤새워 경계 근무하는 초소 바로 뒤에는 한여름의 텐트, 연인들의 공간이 있었다. 국방의 의무 뒤에 젊음의 특권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전방의 적보다는 후방의 유혹을 경계하라'고 할 정도였다. 잠시의 방심은 군인의 민간인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 컸다. 지금 생각하면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친 전우들이 엄청나게 고맙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군기(軍紀) 이상으로 사회적 약속에 대해 책임을 다했다. 위대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약속에 대한 책임으로 굴러간다. 길을 나서면 눈·코·귀·입으로 수많은 유혹이 덤벼든다. 길을 나서는 것 자체가 사회적 약속의 책임이 전제된다. 엘리베이터, 신호등, 버스나 지하철 탑승 등 어느 하나 소홀할 수가 없다. 유혹이 강해지고 많아질수록 나의 안전은 뒤로 멀어진다. 자기만의 문제를 넘어 반드시 다른 사람, 특히 일할 기회를 준 회사 사장과 동료들에게도 피해가 간다. 책임을 다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 예방 활동을 강화하자는 취지였겠지만 한계가 많다. 당사자가 오불관언(吾不關焉), 소귀에 경 읽기로 무심한 행동만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책임을 촉구하며 제대로 훈련시키자는 목소리를 찾을 수가 없다. 새롭게 규정하는 사회적 약속에는 반드시 당사자의 책임의식과 행동이 몸에 배게 해야 하는 데 기대하기 어렵다. 법 만들고 가르치는 자들이 무책임하다. 총선이라는 핑계로 아예 내팽개치고 있다.

엉뚱한 생각이 났다. 군대 훈련 시절에 했던 직각 식사다. 식사 때조차도 정면을 응시하며 직각으로 밥, 반찬 국을 떠서 먹어야 했다. 좌우를 경계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기에 머리를 숙이지 않는 훈련이 되었다. 그 덕분에 내 안전과 사회적 약속을 지키는 좋은 습관이 되었다. 어릴 때 직각 식사를 의무화법도 하나 만들면 안 될까?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