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을 배우자 (이갑영 인천대교수)
 조중동 트리오. 잘 알려졌듯이 조선·중앙·동아일보를 일컫는 말이지만 어느덧 고유명사가 되었다. 이 땅의 수구세력을 상징하는 단어로 말이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조중동이 이성을 잃고 있다(?). 혹시라도 계산이 빗나갈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예전에는 여론몰이를 해도 점잖을 떠는 시늉만은 잊지 않았는데 상황이 급해진 것이다. 인터넷 언론으로 예전같지는 않다지만 밤의 대통령 소릴 들으며 권력을 누렸던 조중동이 선거결과를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중동 하는 짓이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가 되자 개탄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뒤로 호박씨를 까면서 내숭을 떠는 것보다는 드러내놓고 편드는 것이 낫다고 볼 수 있지만, 마치 엄정하게 중립을 지키는 것처럼 치장하는 데는 할 말이 없다. 언론이 공정성을 생명으로 한다지만 이미 낡은 이야기가 되었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특히 선거에서 언론들은 스스로의 정치적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오히려 국민들의 선택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지배하고 있는 조중동이 여론을 독점할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며 몇 차례의 전과(?)도 있다. 이들은 과거에 저질렀던 치부를 감추려는 듯이 균형을 가장한 편협한 여론몰이에 치중했던 것이다.
 이러한 조중동의 오만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더구나 스스로의 생존권을 위해서 투쟁했던 노동자들은 조중동의 횡포를 잊을 수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읊어대는 ‘노동자책임론’ 때문에 얼마나 시달렸던가! 조중동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조중동에도 남다른 점이 하나 있다. 자기이익을 위해서는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불굴의 투쟁정신(?)이다. 한 예로 아무리 조중동이지만 신문부수를 늘리려는 경쟁에서는 ‘자전거일보’라는 비아냥거림은 물론 불법이라는 경고조차 무시하고 서로 뒤엉켜 싸운 것이다.
 정작 옹골차게 살아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를 거치면서 생존이 벼랑으로 몰렸지만 이제는 푸념만 늘어놓고 있다. 진보세력들도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한쪽은 투쟁으로 돌파하자, 다른 쪽은 후보전술이 옳다고 논쟁을 하더니 결국은 갈라서고 말았다. 물론 양쪽은 힘차게 총력투쟁을 선언했지만 엉거주춤하는 사이에 ‘경제자유구역법’이라는 선물만 하나 받았을 뿐이다. 노동조건을 악화시켜서 외국자본을 유치하겠다는 발상이 촌스럽기도 하지만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역량까지 들켜버렸다(?). 노동자들에게 ‘해 볼 테면 해 봐’ 여봐란 듯이 통과시킨 것이다.
 하지만 ‘선전포고’를 받은 노동자들은 말로만 투쟁을 외치면서 한숨만 내쉬고 있다. 이번에도 ‘엄포용 총파업’은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애쓰지 않는 노동자들에게 내일은 어렵다.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노동자들이 고통을 전담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자본가들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듯이, 경제자유구역에서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고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되더라도 노동자들이 인내하기로 결의를 했다면 장애는 없다. 이 지점에서 노동자들은 조중동이지만 한 수 배울 게 있다. 바로 ‘스스로의 이해를 위해서 끝까지 맞서야 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