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전화 여론조사를 앞세워 공직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을 지켜볼 때마다 시민이 정치 이벤트에 동원되는 청중과 소비자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해 본다. 이는 민주주의에서 시민 참여가 갖는 가치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여론조사가 정치적 결정을 지배하면, 민주적 정치 과정과 자유로운 공론장은 존재할 수 없다.

책임 있는 참여를 기초로 다양한 이견이 합리적으로 경합하면서 시민에게 의사와 정책 선호 형성의 기회를 제공해야만 민주정치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민주정치도 마케팅 회사처럼 운영될 수 있다. 시민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고르듯이 클릭 몇번으로 자신의 역할을 끝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정책적 선호를 설명할 필요가 없고 결과에 책임을 질 이유도 없다.

시민 요구 혹은 세간의 민심 그대로 정치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일까? 이런 게 민주주의라면, 정치가나 정당이 힘겹게 시민의 참여를 조직하고 공적 토론을 이끄는 수고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인맥과 돈의 힘으로 대중의 인기를 사고 표를 구매하려고 할 것이다. 그 결과는 시민이 동원 대상이 되고, 여론의 이목을 끄는 이벤트 행사에 이끌린 사람들 사이에서 팬덤정치, 동원정치가 심화할 것이다.

여론조사는 민심을 왜곡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론조사는 방법론적 한계와 조작의 가능성 때문에 해석에 신중히 해야 한다. 여론조사가 선출직 공직자의 후보 결정 과정을 지배하고 마치 시민 의견을 집약한 것처럼 해석되는 것은 위험하다.

언론사가 신뢰하기 힘든 여론조사를 습관처럼 상업적인 기획사에 불과한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하고, 경쟁적으로 동원하는 일은 자제돼야 한다. 차라리 그 비용으로 더 양질의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정치 과정에 들어가게 기자들을 지원하고, 시민 삶의 현장을 취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

하지만 어제도 오늘도 언론사들은 여론조사를 앞세우고, 정치 현장이 아니라 책상 앞에 앉아 주요 정치 세력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는 것을 중심에 놓고 기사를 쓴다. 정치 전문가나 컨설턴트들과 전화 통화나 이메일로 받은 내용으로 사실성과 객관성보다 해석에 대한 해석을 위주로 기사를 생산한다. 이런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윤리적 기초라 할 시민성이 향상되는 건 불가능하다.

여론조사 기관을 자신들 입맛대로 선정하고, 소규모 단위의 불특정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로 경선하면서 공천을 확정 짓는 거대 양당의 시스템 공천은 시민을 단지 구경꾼과 소비자, 동원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공천은 객관적이면서 종합적인 기준을 갖고, 공직 후보를 국민 앞에 추천하는 공정성과 공공성을 지닌 정치 행위가 돼야 한다. 공천은 인기가수를 뽑는 경연대회가 아니다. 여론조사가 지배하는 선거가 한국 정치를 더 혼탁하고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다.

▲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