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병 시사평론가
▲ 박상병 시사평론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미국정치도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여론은 전투적 구호와 상대방을 향한 혐오가 도를 넘어 선지 오래다. 미국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경고음도 최근 들어 부쩍 커지고 있다. 대선을 8개월여 남겨 놓은 시점이지만 미국의 미래는 갈수록 불투명해 보인다. 유력 정치인들이 지긋지긋하다며 아예 정치판을 떠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선 재대결은 미국정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상징하고 있다. 한마디로 인물이 없다는 얘기다. 유력한 인재들은 정치판을 떠나고 어처구니없는 인물들이 양극화된 미국정치를 주름잡고 있다는 냉소다.

웬만하면 재선 가능성이 높은 미국 대선에서 현직 바이든 대통령이 고전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돌아온 트럼프'에게 밀리고 있다는 소식은 미국에서도 충격적으로 들리는 모양이다. 뭔가 새로운 모멘텀을 찾아야 한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전선만 몇 군데이다. 언제까지 전쟁 물량만 쏟아부을 수도 없는 일이다. 평화와 협력을 향한 갈증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백악관 한 인사가 뜬금없이 북미대화의 필요성을 언급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물론 원칙론을 언급한 것이겠지만 혹시 국면이 바뀌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는 한 번쯤 짚고 넘어갈 일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상징적인 곳이 바로 외교무대이기 때문이다.

미국 백악관 NSC의 랩 후퍼 동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지난 4일 한 연설에서 더 안전한 세계를 위해서라면 북한과 비핵화를 향한 '중간단계' 조치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북한의 '핵 동결'을 위한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미국은 지금까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중간단계로 북미 핵 협상을 벌여왔다는 점에서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미일 공조를 바탕으로 고강도의 대북압박이 이뤄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그것도 바이든의 대선 열세가 거론되는 현시점에서 백악관의 담당 선임보좌관이 직접 밝혔다는 점이다.

지금은 미국이 전략자산을 동원해 고강도 대북압박에 나서고 있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북한과 협상테이블을 준비할 수 있는 나라이다. 바이든 재선을 위해서라면 한반도 정세의 급변은 언제든지 리세팅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럴 경우 우리 정부는 자칫 난감한 일이 생길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언제까지 미국의 방향만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외교의 기본이다. 올해는 특히 중국과의 대화에 공을 들여야 한다. 대북정책도 강경 일변도는 국익에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좀 더 유연해야 한다. 벌써 미 백악관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박상병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