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공직선거법 제24조의2는 국회의원지역구 확정과 관련해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해 4월에 이미 확정했어야 한다. 새로 확정된 선거구에 맞춰 후보자들은 공약을 만들고, 전략도 짜고 주민들도 만나는 것이 이 법의 취지이며 또한 상식이다. 그래야 정치 신인들도 일찌감치 지역 현안을 챙기고 나름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2대 총선 40여일을 앞둔 지금도 선거구획정안은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있다. 당초 선거구획정위가 제시한 획정안(원안)을 놓고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의 반대가 심했다.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획정위가 지난해 12월5일 제시한 원안은 서울과 전북에서 각각 1석이 줄고, 인천과 경기에서 각각 1석이 늘었다. 특히 서울 노원구와 전북은 민주당 강세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이기에 민주당이 즉각 반발했다. 당시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견만 반영된 편파적인 안으로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역구가 재조정되는 일부 지역에서는 현수막까지 내걸며 공개적으로 반발하기도 했다.

더는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아니면 선거구획정위의 원안대로 가도 크게 손해가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민주당 입장이 갑자기 바뀌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27일 국민의힘을 향해 “불공정한 선거구획정위의 수정안을 과감하게 제시하든가, 획정위의 (원)안을 받든가 두 가지 중 하나로 입장을 정리하라”고 요구했다. 선거구획정 논의가 시간상으로도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원안대로 가자는 뜻으로 보인다. 불과 몇 달 전 입장이 갑자기 바뀐 셈이다. 하지만 입장이 바뀐 배경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진솔한 해명이 없다. 그러면서도 오는 29일 선거구획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정부와 여당 탓이라며 날을 세웠다. 우리 정치가 아무리 소모적인 정쟁으로 일상화됐다지만 민주당의 이런 주장은 쉬 공감하기 어렵다. 이제 와서 '네 탓'이라니.

민주당이 당초 '국민의힘 의견만 반영됐다'며 강하게 반대했던 선거구획정위 원안을 뒤늦게 지지하는 입장으로 바뀐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물론 시간상 더 늦출 순 없다. 그리고 당초 불리할 것 같았지만 세부내용을 보니 크게 불리한 것도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국면 전환'이 아닐까 싶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총선정국은 민주당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특히 민주당 발 '비명횡사'에 여론마저 차갑게 돌변하고 있다. 자칫 민주당이 두 쪽으로 갈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 국면을 탈출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강할 것이다. 선거구획정을 빨리 매듭짓고 이제는 예선이 아니라 본선 구도로 가자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렸을 것이다. 민주당의 변심, 그 내면에는 국면 전환을 위한 절박감이 더 강하게 배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박상병 시사평론가
▲ 박상병 시사평론가

/박상병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