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담화문

“환자·가족에 엄청난 고통
생명 존엄성, 모든 것에 우선”
▲ 이용훈 마티아 주교

“인간 생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의료대란이 9일째로 접어든 26일 천주교수원교구장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마티아 주교가 정부와 의료계를 향해 이런 내용을 담은 담화문을 발표했다. 종교계가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에 따른 정부와 의료계 갈등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용훈 주교는 현 사태에 대해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와 이에 동의하지 않은 의료계, 그리고 이를 둘러싼 시민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위협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현재의 의료대란으로 확산하고 있는 모습은 정부와 의료계 인사뿐만 아니라,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 절박하게 수술을 기다리는 이들, 내원하는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안겨주고 있다”며 “'의료 공백' 현상으로 인해 당장 불편함을 겪게 될 환자뿐만 아니라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는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또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것은 생명의 존엄성이기에 국가도, 의료계도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은 국민을 보호하고 그 생명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일”이라며 “더 나은 사회로 나가기 위해 불가피한 갈등과 타협을 이유로 환자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게 하거나 볼모로 잡는 일은 절대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 주교는 현 사태의 해법으로 '인내'와 '대화'를 강조했다.

이 주교는 “사회는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뤄져 있기에 다양한 주장과 목소리가 있을 수 있고, 이 다양성이 때로는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갈등은 무조건 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는 인내와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할 대상이기에, 여러 계층의 합리적인 의견을 수렴해 돌파구를 찾도록 지혜를 모을 때”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의료계는 국민과 환자들의 건강한 삶을 염두에 두고 열린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며 “국민의 기대와 소망을 살피면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고 돌보려는 공동의 목적을 실현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모두 자신의 사명과 책무를 온전히 수행하는 초심으로 돌아가 오늘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남춘 기자 baikal@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