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브국립대 교수.
▲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우국립대 교수

구 사회주의 국가는 유난히 부정부패가 심하다. 중국 러시아 베트남 우크라이나 중앙아시아 등지에서는 음반이나 책의 불법 복제가 당연시된다. 저작권도 무시한다. 지구의 절반을 차지한 세력이 평등한 세상, 실업자·매춘·범죄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런데 속으로 곪아 터져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 유일하게 북한만이 노동당,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읊조리고 있다.

필자는 우크라이나에서 운전할 때 면허증 밑에 우리나라 돈 만 원 정도를 가지고 다녔다. 위반을 안 해도 수시로 교통경찰이 차를 세우는 통에 경찰이 세우면 그냥 만 원을 주고 통과했다. 어느 날은 두 번 단속에 걸린 날도 있다. 그러다 전쟁 후부터는 뜸하더니 요즘 다시 단속이 심해지고 있다.

예전에 우크라이나에서 일류 대학교에 입학하려면 3000달러가 정가였다. 학비를 미리 내는 계약 입학이 있지만 입시 담당자나 윗선에 3000달러를 주면 등록금 면제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1년 학비가 1500달러이니 4년 학비 6000달러를 일시불 반값으로 내고 입시관계자와 부모는 윈윈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방법은 교묘해졌다. 학점은 보통 과목당 100~200달러였다. 그냥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의 선물이나 편지지에 돈을 넣었다.

예전 이곳 관리들의 부정부패 행태는 다양했다. 운전면허증 200달러, 식당 인허가 1만 달러, 줄 없이 병원 예약 진료 20~30달러, 외국인 영주권 취득 8000~1만 달러 심지어 공항에서 긴 줄에서 나와 직원에게 10~20달러를 주면 맨 앞으로 나와 출국심사를 했다. 모든 민원실에는 긴 줄이 있다. 눈치껏 돈을 주거나, 안면이 있거나, 윗사람과 연관이 있어 담당자에게 연락하면 줄 없이 일을 처리한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기 재산을 공개하고 고위 공직자들도 재산을 공개하라고 지시했지만, 그후 소식은 없다. 국회의원, 고위공무원, 장성, 장·차관들이 부패 고리에 놓여 있다. 공직자들의 공식 월급은 1000달러가 안 되지만 고급승용차와 호화주택이 즐비하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부정부패 비리 천국이었다. 필자 초등학교 시절에는 담임선생님 과외가 있었다. 신흥동에 살던 교통경찰 집안에는 현금이 넘친다는 소문이 있었다. 관공서나 병원이나 인허가가 필요한 곳과 특히 교도소, 세무서, 경찰서 등에는 알게 모르게 돈이 오갔다. 오죽하면 1970년대 김지하 시인은 오적이라는 시를 쓰고 감옥에 갔을까.

며칠 전 우크라이나 정보국은 국방부 고위 관리들과 무기 제조업체 간 비리로 10만 발의 박격포탄 구매계약 체결을 하고 한화 530억 원 대금을 선불 지급했지만, 무기는 제공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비상계엄 하 정국이다. 작년 8월에도 징집담당자들의 병역 비리로 대통령은 24개 주 전 지역 병무청장을 해임했다. 유럽 전역에 50만 이상의 우크라이나 병역대상자가 난민으로 나가 있다. 전시 비상계엄으로 18~60세의 남성들은 외국으로 나갈 수 없으나 온갖 방법으로 나간 것이다. 5000달러에서 1만 달러를 주면 멀쩡한 사람도 정신이상자가 될 수 있고 군에 갈 수 없는 장애인을 만든다.

전쟁 후 미국, 유럽, 한국, 일본 등은 군사, 재정, 인도적 지원 등 한화로 300조 원이 넘는 금액을 도와주었다. 이 지원이 투명하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전쟁 중인 나라의 부정부패는 필패(必敗) 요인이다. 오래전 장개석 군대에 지원되는 무기가 며칠 후에 모택동 군대로 넘어갔다는 우스갯소리는 당시 장개석 군대의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했는지 말해준다. 결과는 장개석 군대의 패배로 이어졌고 그들은 대만으로 쫓겨났다. 우크라이나의 부정부패와 병역 비리가 계속된다면 이 전쟁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우국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