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성섭 풍물미학연구소 소장
▲ 송빈산 풍물미학연구소장

우현(又玄) 고유섭 미학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면 '우현(又玄)'이라고 할 수 있다. 고유섭은 '우현'이라는 아호를 어떠한 곡절 때문에 사용하게 되었으며,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최근 고유섭 평전을 쓴 이원규 선생에 의하면, 고유섭이 '우현'이라는 아호를 사용한 것이 1933년 무렵이라고 한다.

그런데 고유섭은 왜 스스로 자신의 아호를 '우현'이라고 지었던 것일까? 고유섭은 자신의 미학적 특질을 드러내기 위해 '우현'이라는 아호를 선택한 것은 아닐까? 예술적 활동의 본질과 의의가 바로 '우현(又玄)'하다고 보았기에 그는 자신의 아호를 '우현'이라 하지 않았을까?

'우현(又玄)'은 노자 <도덕경> 제1장에 나오는 용어로, 천지의 시작을 뜻하는 '무(無)'와 만물의 어미가 되는 '유(有)', 이 두 가지는 함께 출석하였으면서도 이름을 달리하는데, '함께(同)'하는 사태, 그것을 '현(玄)'하다고 하였다. 그 뒤를 이어서 '현(玄)'하고 또 '현(玄)'하니(玄之又玄), 온갖 묘한 것의 문(門)이라고 노래하였는데, 여기서 고유섭은 '우현(又玄)'을 자신의 아호로 취하였다.

<도덕경>에 의하면, '유'와 '무'가 공존하는 사태가 바로 '현(玄)'이다. '현(玄)'한 사태는 명석하고 판명한 세계가 아니라 애매하고 모호한 세계다. '유'와 '무'가 새끼줄처럼 꼬여있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사태가 바로 '현(玄)'이기 때문이다.

'현(玄)'한 사태를 달리 말하면,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 할 수 있다. '유'와 '무'는 서로 생기게 한다는 것이다. '무' 때문에 '유'의 이로움이 생기고, '유' 때문에 '무'의 작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려움과 쉬움(難易), 길고 짧음(長短), 높고 낮음(高下), 음성(音聲), 앞뒤(前後)도 공존한다고 노자는 말한다. 그래서 “큰 완성은 결함이 있는 듯하고, 크게 채워진 것은 빈 듯하고, 크게 곧은 것은 구부러진 것 같고, 큰 기교는 졸렬한 것 같고, 훌륭한 논변은 어눌한 것 같다”(<도덕경> 제45장)고 말한다.

'유'와 '무'가 동시에 출현해 있다는 것은 서로 대립적이고 모순적인 것이 동시에 공존한다는 것을 뜻한다. 서로 모순되는 것들이 공존하는 상태가 오히려 본래 세계라는 말인데, 모든 방패를 다 뚫을 수 있는 창과 모든 창을 다 막아낼 수 있는 방패가 공존하는 세계가 현실의 세계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달리 '역설적 현존'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세계는 뉴턴 역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오로지 양자 역학으로만 설명이 가능한 세계이다. 양자 역학에 의하면 빛은 입자이면서 파동이다. 입자와 파동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모순되는 사태이다. 두 개의 틈이 벌어진 칸막이를 통해 벽에다 총알을 쏘면, 벽에는 두 줄의 흔적만이 생기는데, 총알이 입자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동일한 두 개의 틈이 벌어진 칸막이를 통해 파동을 치게 하면, 벽에는 두 줄이 무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간섭으로 여러 개의 무늬가 생기는데, 이것이 파동이다.

모든 물질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며, 서로 대립하는 성질이 공존하는 세계이다. 우현 고유섭은 현실 세계는 역설적 현존의 세계이며, 세계가 그러하기에 미학 또한 역설적 사태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자신의 아호를 '우현(又玄)'이라고 한 것은 아닐까?

우현은 한국미의 특질에 대해 '무계획의 계획', '무기교의 기교', '어른 같은 아해', '구수한 큰 맛과 고수한 작은 맛', “'적요와 명랑'이라는 두 개의 모순된 성격이 동시에 성립되어 있다”고 요약한 바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미는 역설적 현존의 세계, 양자 역학의 세계를 미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이유로 바야흐로 케이 컬처(K-Culture)의 시대가 도래한 것은 아닐까?

/송빈산 풍물미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