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지독하게 가난해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 취직했다. 프레스에 낀 팔이 비틀어져 장애를 얻는다. 광주대단지의 소년공 시절, 힘겨운 노동과 열악한 환경을 견디면서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1982년 대학에 입학한다. 그는 1986년 사법고시에 당당히 합격한다.

사법연수원 졸업 후 성남에서 인권변호사 생활을 시작한다. 시민운동으로 발을 넓히면서, 재수 끝에 성남시장에 당선된다. 재정 파탄을 이유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파격적인 행보로 전국적인 관심을 끄는 정치인으로 이름을 알린다. 박근혜 정부 때 보건복지부와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사업으로 갈등을 빚었으며, 청년 현금지원과 무상 교복 사업을 추진하면서 중앙정부와 충돌한다. 일개 중소도시의 시장이 소셜미디어로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광폭 행보로 사이다란 별명을 얻는다.

“적극적 거짓말이 아니면 허위 사실이 아니다”라는 법적인 해석으로, 허위사실 공표죄가 3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정치생명이 끝날 위기를 모면한다. 여권 유력한 대권주자들이 미투로 인한 구속과 자살, 권력형 비리, 자녀 입시 비리 등으로 대권 후보에서 탈락하자 기회가 온다. 그는 2021년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며 대선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한다.

그러나 인기 절정의 순간, 대장동 사건이 터진다. 대장동 사업은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로비 등으로 순조롭게 마무리된다. 대장동 사업은 화천대유 일당에게 수천억 원의 이익을 안겨 준 단군 이래 최대의 민관합동 개발 비리 의혹사건이었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에서 정치 경험이 전무한 검찰 출신 윤석열에게 패배한 그는 인천 계양을 선거구를 송영길에게 넘겨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대장동, 백현동, 공직선거법 위반, 쌍방울 대북 송금, 성남 FC 뇌물 의혹 등 10여 개의 사법 리스크가 제기된다. 단식과 피습사건이 일어난다. 그가 한고비를 넘어갈 때마다 역설적으로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는 황폐해지고 퇴보했다.

친형과의 불화와 형수를 향한 욕설, 공무원 측근들의 자살 사건, 법인카드 사적 사용 등이 굴레로 따라다닌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운동권 출신들과 출세주의자들이 그의 주변으로 불나방처럼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아웃사이더이자 검찰독재정권에 탄압받는 민주 진보 인사로 추어올리는 것도 문제이다. 인류 역사에서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승리하는 위대한 영웅의 서사는 대부분 과장이거나 날조이다. 가지 않는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 사이에 한국 정치의 한 단상이 있다.

▲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