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환상적이거나 감성적인 내용을 쉽지만 감각적인 문장으로 다루어 인기가 많다. 소설이라면 보르헤스의 단편이나 마이클 크라이튼의 SF, 존 르카레의 스파이 소설 쪽이 구미에 맞지만, 에세이라면 무라카미 것들이 꽤 재미있다. 문체의 스타일이 좋고, 재즈, 운동, 여행 등 여유로운 작가의 라이프 스타일이 대리 만족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각설(却說)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가론 중 귀 기울여 들을 만한 내용이 있다. 소설가 하면 담배를 물고 온종일 책상에 앉아 펜을 끄적이는 것을 상상하지만, 직업 소설가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창작은 굉장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기 때문에 평생 글을 쓰려면 열심히 체력단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자신은 아침 4시간 집중적으로 글을 쓰고 나면, 나가서 수영과 마라톤 연습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매년 풀 코스 마라톤 대회를 출전하고 철인 삼종 경기에도 도전했다는 것은 팬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까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종일 책상에 앉아 있을 거라고 상상하는 것은 착각인 것이다.

현대 사회는 사람들을 하루의 대부분 책상, 자동차, TV에 묶어 놓는다. 현대 직업의 80% 이상은 책상에서 하는 일이며, 많은 사람이 자가용으로 출퇴근한다. 질병관리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은 평균 8.6시간을 앉아서 지낸다. 수백만 년 동안 하루 8시간 먹을 것을 구하려 뛰어다니던 인류가 불과 200년 사이에 8시간을 앉아 지내는 '좌식생활(sedentary life)'에 결박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비활동은 기초에너지 대사와 지방분해 효율을 떨어뜨리고, 비만을 시작으로 당뇨병, 심뇌혈관, 그리고 조기 사망의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두통, 거북목, 디스크 등의 근골격 이상과 외부와 단절, 우울감은 보너스이다.

좌식생활이 얼마나 나쁜지에 대한 연구 결과들은 충격적이다. 하루 6시간 이상 앉아 있는 사람은 암, 심장병, 당뇨병, 신장병, 자살 등 14개 질병의 발병률이 높고, 하루 3시간 이하로 앉아있는 사람보다 일찍 사망할 확률이 19% 높다. 앉아 있는 시간이 2시간 증가할 때마다 대장암은 8%, 자궁내막암은 10%, 폐암은 6% 증가한다는 메타분석도 있다. 급기야 WHO는 좌식생활이 고혈압, 흡연, 고혈당에 이은 네 번째로 흔한 사망원인이라 공표했다.

좌식생활에 대한 저서로 유명한 메이요 클리닉의 존 르바인 박사는 “좌식생활은 흡연하는 것과 같다”라는 비유로 세상에 경고했다. 한 번에 서너 시간씩 앉아있는 것은 매일 담배 한 갑 반 피우는 것과 비슷하며 에이즈에 걸리는 것이나 낙하산을 타는 것보다 위험하다는 것이다. 조금 과장이 있다 해도 오래 앉아 있는 것의 해로움은 부인할 수 없는 과학적 사실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주말에 몇 시간 운동한다고 좌식 생활의 해악이 상쇄되지 않는다는 최근 연구 결과이다. 흡연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 금연인 것처럼, 좌식생활을 보상하는 유일한 방법은 더 이상 앉아있지 않는 것밖에 없다는 뜻이다.

직장을 다니며 좌식 생활을 피할 몇 가지 팁은 있다. 대중교통이라면 한 정거장 먼저 내리고, 자가용이라면 최대한 멀리 세운다. 책상에서 일 할 때는 30분마다 한 번씩 일어난다. 전화를 받고, 메일을 처리하는 일은 서서 하고 대화는 걸으며 한다. 계단으로 다니고 식후에는 반드시 산책한다. 서서 일하는 책상을 사용하는 것도 차선책이다. 70대 중반에 들어선 무라카미 옹이 아직도 베스트셀러를 내는 기염을 토하는 것은 4시간 이상 앉아 있지 않은 집필 스타일을 지켰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는 말이 있지만, 건강은 다리로 챙기는 것이다. 책상을 멀리하기 어렵다면 TV와 자동차라도 멀리하는 것이 상책이다.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