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창호 송암미술관 학예사.
▲ 연창호 인천도시역사관 학예연구사

예술은 작품을 말하고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을 예술가라고 흔히 말하지만 삶과 인생만큼 드라마틱한 것은 없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삶이야말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기쁨과 고통, 고난과 성취, 영광과 굴욕 이 모두가 위대한 예술품 아닌가.

“삶이 지옥이라서 날마다 천국을 생각한다.”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의 첫 부분에 나오는 글로 기억한다.

인간은 고통을 바라진 않지만 고난 속에서도 무언가 만들어 낸다. 그 사례가 예술이고 문학이다. 물론 이것은 고통과 고난을 극복하고 승화했을 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지만 말이다.

필자는 16년째 인천 구석구석을 다니고 있다. 인천은 과거와 현재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 직조화된 곳이다. 구도심과 신도시까지 가지가지 다 있는 곳이니 말이다. 특히 근현대사의 삶의 흔적이 인천 골목길 곳곳에 배여 있다.

필자가 자주 다니는 곳은 인천의 구도심이고 주로 골목길을 다닌다. 그냥 걸어 다니는 것이다. 골목길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예술품이라 생각한다. 그곳엔 인간의 땀과 눈물이 배인 길과 건물들이 있다. 특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를 생각하며 걷는 골목길 답사는 가장 즐거운 여행 아니겠는가.

인천은 개항 이후 140년 동안 노동자의 도시였다. 부두와 공장의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자연히 노동자와 서민의 애환을 담은 문학 또한 탄생하였다. 강경애 <인간문제>, 현덕 <남생이>, 조세희 <난쏘공>, 박영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유동우 <어느 돌멩이의 외침>, 방현석 <새벽출정> 등이 생각난다. 이들의 작품에는 그 시대의 노동자와 서민의 애환이 담겨 있다. 기쁨과 슬픔뿐만 아니라 분노와 저항도 깃들어 있으나 문학적인 정서를 잘 녹여 내고 있다.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갈구하는 글이라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난쏘공>은 수백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여전히 노동은 시대의 화두이고 보편성을 지닌 주제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책을 읽고 그 현장을 가보는 길은 재밌고 의미 또한 깊다.

처음엔 중구 개항장 일대와 동인천역 남쪽 일대를 돌아다녔다. 당시 이민사박물관에 근무하였을 때라 하와이 이민자들이 걸어갔던 답사길을 기획하여 걸어 다닌 적도 있었다. 도보 답사를 하면서 책에서 읽은 것을 현장에서 확인하였다.

그 후엔 동인천역 북쪽의 동구 길목길을 걸어 다녔다. 혼자서도 돌아다녔고 답사팀으로도 다녔다. 특히 동구 골목길은 노동자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길이었다. 지금도 노동자의 길이 운영되고 있다. 소설로 읽은 은강방직이 동일방직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동구와 부평에 있는 노동자들의 줄사택(나가야 주택) 역시 골목길에서 만나는 풍경이다. 세월의 풍상을 견디며 노쇠한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줄사택은 곧 재개발로 인해 모두 사라질 판이다.

멀리 북쪽의 서구에도 답사를 다녔다. 검여 유희강의 흔적이 있는 시시내 매화 공원에를 갔고, 고인돌이 마을 한복판에 즐비한 대곡동에도 가 봤다. 바람따라 발길따라 주말마다 돌아다녔다.

문학의 원천은 경험이다. 경험 중에서도 뼈아픈 고통이 문학을 만든다. 경험을 한 자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풀어낸 게 문학 아닌가. 문학은 삶의 일상을 노래하면서도 또한 민족과 민중의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시와 서사로 형상화한다. 고난은 아픔이지만 이를 승화하면 문학으로 길이 남는다. 나는 이를 석정남의 '공장의 불빛'을 통해 확인한다. 요즘 동일방직에서 일하며 글을 남긴 석정남의 글을 다시 읽고 있는데 고난은 인생을 단련하는 동시에 문학으로 승화되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부두와 공장에 넘쳐나던 노동자들이 이젠 외국인노동자들로 채워졌다. 인천은 여전히 노동자의 도시이다. 오는 봄에 <난쏘공>을 다시 읽고 '기계도시 은강'의 골목길을 다시 걸어 보고 싶다.

/연창호 인천도시역사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