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산단 주물업체 집단화로 44개 업체 이전…한때 대성황
40여년 지난 지금 급격한 쇠퇴…대부분 폐업하거나 공장 임대
政, 사업 재편·인력정책 필요
▲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 인근 서부산업단지 일대. 주물산업 쇠퇴가 가속화되고 있다.

31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 인근 서부산업단지. 총면적 93만8624㎡에 달하는 이곳은 1983년 수도권 최초로 흩어진 주물업체와 관련 기업을 모아 집단화를 성공한 곳이다.

당초 서부산단 노른자 땅인 24만7933㎡ 면적 부지에 44개 주물업체들이 이전했고, 이후 확장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서부산단은 지난해 기준 전체 288개 업체에 고용 인원 5526명을 기록했지만, 정작 철과 구리 등의 원자재를 녹여 제품을 만들며 산단 활성화를 이끈 주물산업은 쇠퇴가 가속화하고 있다.

1983년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내 44개 조합원사는 40여년이 흐른 지금 급격한 산업 변동을 이기지 못하고 20개 조합원사만 남았다. 이마저도 실제 가동되는 업체는 단 9개뿐이다. 11개는 사업을 접고 공장에 임대를 놨다. 야근과 특근으로 물량을 쏟아내던 시절은 빛바랬고, 노후화한 공장들은 임차인을 통해 공간의 수명을 이어간다.

1990년대 제2공장을 증축할 만큼 활발한 생산을 해오던 한 기업은 비주거용 건물 임대업으로 업종을 전환한 상태다.

김종환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전무이사는 “공단 내 제일 큰 주물업체도 생산을 접은 지 10여년”이라며 “업력도 되고, 규모가 컸는데도 저물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생산해도 수지 타산이 안 맞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현재 가동 중인 업체들은 기존 수작업을 자동화 설비로 변화시키며, 자동차나 선박 등 전문 부품을 생산해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을 줄이고, 전기차 등 친환경 차 생산 확대로 기조를 바꾼 자동차 시장 흐름에 타격을 피할 수는 없다.

양태석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국내에 일이 없는데 대기업들이 단가를 낮춰 달라 말한다. 여기서 맞춰주지 않으면 중국을 갈 거라는 식”이라며 “자동화된 업체도 이런데, 수작업으로 조선 엔진 블록이나 실린더를 생산하는 업체는 더 열악하다. 일감이 주는데, 일할 사람도 없다. 향후 5년 안에 업종이 아예 없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커져 버린 중국 주물 생산 시장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게 하는 요인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중국의 주물 수출량은 540만t으로 전년 대비 5.9% 증가했다. 반면 수입량은 1만5000t으로 13.8% 감소했다.

현재 중국은 고정밀용 주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편이지만, 업계에서는 국내 주물업체 폐업이 가속화하면 모든 주물을 중국으로부터 가져오는 시기가 올 수 있다는 불안감도 팽배한다. 뿌리산업이 직면한 원자재 가격 급등, 전기료 인상, 생산인력 부족 등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사업 재편과 인력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강정석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 선임연구원은 '뿌리산업의 일자리 현황과 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뿌리산업은 숙련 노동력 중심의 전통 산업이었지만, 최근 제품·소재의 트렌드 변화로 패러다임이 전환됐고 글로벌 첨단산업과의 경쟁도 있다”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고부가가치화, 노동시장 구조 개선 등 일자리의 질 향상뿐 아니라 구인난 해결을 위한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글·사진 박해윤 기자 yu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