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현준 호원대학교 교양과 교수∙소설 국회외전 작가
▲ 서현준 호원대학교 교양과 교수∙소설 <국회외전> 작가

2023년 늦가을 호원대학교에서 ESG에 관한 세미나가 있었다. 발제와 토론에 이어 마무리는 이 학교 총장님께서 해주셨다. “농사지어 먹고 살던 옛날에는 천석꾼이 있으면 그 마을 사람들은 최소한 굶지는 않았습니다.” 내로라하는 ESG전문가들의 발제와 열띤 토론에도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던 학생들은 그제 서야 ESG를 이해했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ESG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씨족공동사회에서 두레라는 일종의 품앗이는 농사일을 서로 돕기 위해 품이 많이 요구되는 농경에 마을 남자 전원이 의무적으로 참가했으니 ESG 고대 버전이라 할 수 있다.

12세에 고아가 된 김만덕은 상업에 종사해 돈을 많이 벌었다. 1793년 제주도에 대기근이 닥치자 전 재산을 풀어 육지에서 사 온 쌀을 모두 진휼미로 기부하여 빈사 상태의 제주도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ESG 18세기 버전이다.

2021년 출간된 제이슨 도시, 더니스 빌라 공저 <제트코노미(Z-Conomy)>에서 MZ세대를 새로운 글로벌 트렌드세터(trend setter)로 소개했다. 통계에 따르면 MZ세대가 세계 인구의 63.5%를 차지하고 있고, 그들 중 60%가 아시아에 거주해 이 지역에서의 이들의 시장잠재력은 막강하다.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2019년도 연례서한에서 MZ세대 직원 가운데 63% 이상이 기업의 목적을 이윤창출이 아닌 사회개선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MZ세대는 기업의 경제적 성과 말고도 사회적 가치와 명분을 중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가치소비적인 특성의 ESG MZ버전은 한국이 ESG를 실천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에 대한 책임은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즉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 추구 그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기업 입장으로 봐도 잠깐 떼돈 벌고 회사 문 닫는 것보다는 백 년 이백년 신뢰받고 존경받는 기업이 되어야 명예롭고, 또한 이를 위해서는 ESG의 실천이 요구되며, 그것은 기업의 생존과 존속을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기도 하다.

환경에 탄소배출권이 거래되는 시대이니만큼 가능한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재활용과 재생에너지 사용은 기본이다. 지구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기회비용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소통과 협력에 방점을 둔다. 다양성의 시대와 보조를 맞추려면 역지사지(易地思之)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공정(公正)에 다가갈 수 있고 최소한 차별이라는 사회적 비난에서 멀어질 수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도 중요하다. 투명하고 윤리적인 기업이 시장에 신뢰를 줄 수 있다.

요즘 대화 중 ESG 인용이 부쩍 늘었다.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와 투자자 등 폭넓은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ESG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ESG는 규정을 따르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주워 피우려는 노인에게 안주머니 담배를 꺼내 건네는 중년의 신사. 청소하다 발견한 현금 100만원을 경찰을 통해 주인에게 돌려준 울산의 환경미화원. 종이상자 안 돼지저금통에 5020만1950원과 '소년 소녀 가장 여러분 힘내십시오'라고 적힌 편지.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경비원을 위해 치료비를 보탠 아파트 주민들. '쌀'타클로스를 자처한 농부의 온정. 불길에 휩싸인 주택을 본 행인의 용기 있는 행동.

ESG는 기업만의 몫이 아니다. 인도의 눈을 쓸고, 쓰레기를 줍거나 물건을 낭비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주는 선한 마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내 마음속 ESG이다.

/서현준 호원대학교 교양과 교수∙소설 <국회외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