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남곤 전 옹진군의원
▲ 홍남곤 전 옹진군의원

백령도의 겨울은 유난히 춥다. 서해 최북단에 위치하는 섬이기 때문이다.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며 풍랑도 자주 이는 편이다. 툭하면 배가 결항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백령도의 자연조건이 얼마나 혹독한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런 자연적인 조건에 더해 요즘처럼 남북관계가 팽팽한 긴장관계일 때는 심리적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는다. 북한에서 포를 몇 발만 쏘면 주민들은 대피소로 모여야 한다. 백령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꾸는 꿈이 전쟁이 나는 꿈이다. 얼마 전 연평도 인근에서 북한이 포탄을 발사했을 때 연평도는 물론 백령도를 포함한 서해5도 주민들은 트라우마와 함께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다.

그럼 백령도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아갈까.

이처럼 물리적, 심리적으로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백령도 사람들만의 비법이 있으니, 바로 맛있는 음식을 해먹는 것이다.

우선 김장김치를 보자. 백령도는 김장철에 '호박김치'라는 이름도 예쁜 특별한 김치를 담근다. 여기에 들어가는 재료는 일반 김장과 조금 다르다. 백령도 김장에는 '꺽주기'(삼식이)알과 '분지'라는 향내 나는 나무 열매가 들어간다. 여기에 시래기, 배추 잎사귀, 늙은 호박을 먹기 좋게 썰어 고추, 파, 마늘을 넣고 소금으로 간해 30일 정도 익힌다. 이렇게 익힌 김장김치를 꺽주기 말린 것을 넣고 푹 끓여 들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려 먹으면 한겨울 겨울 반찬으로 최고의 진미가 된다.

또 다른 겨울 김치는 '더벙이 김치'이다. 더벙이라는 해초로 담가 먹는 김치이다. 백령도 사람들은 바위에서 더벙이를 채취해 한번 삶고 이물질을 제거한 뒤에 찬 곳에 보관하다 동치미가 맛있게 익을 무렵 동치미 국물과 무채를 채 썰어 넣고 밥과 함께 먹거나 국수를 말아먹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히다. 더벙이 김치는 숙취 해소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어 애주가들의 겨울 특식으로 손꼽힌다.

백령도 냉면으로 잘 알려진 사곶냉면 역시 백령도 사람들이 겨울에 즐겨 먹는 음식이다. 내가 어린 시절 어른들은 장작불로 가마솥에 끓인 물에 메밀 반죽으로 만든 면을 그대로 넣어 끓여 먹었다. 가마솥 위에 냉면 틀을 설치한 뒤 힘센 장정 두세 명이 위에서 메밀 반죽을 누르면 그대로 면이 되어 가마솥으로 줄줄이 들어갔다.

이렇게 끓여 찬물에 헹군 면을 살얼음이 투명한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으면 정말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이 좋았다. 백령도엔 먹을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백령도 냉면은 야식으로도 최고였다.

메밀면을 먹는 다른 방법은 자연산 굴에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칼국수를 끓여 먹는 것이었는데 백령도 사람들은 이 음식을 장국이라 불렀다. 이런 백령도의 전통음식은 지금 사곶냉면, 굴칼국수로 살짝 변신해 사람들을 만나는 중이다.

만두와 비슷한 '짠지떡'이란 음식도 있다. 짠지떡은 메밀반죽으로 피를 만들고 자연산 굴과 김치 등을 소로 넣어서 만두처럼 먹는 백령도만의 특식이다. 인천엔 백령도 음식점이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짠지떡을 만들어 파는 곳도 있다.

오늘 저녁은 친구들과 고향 백령도의 전통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겠다.

/홍남곤 전 옹진군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