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80년대는 불행한 시대였다. 단순히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억압받고 고통당했던 것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절대악과 싸웠던 엘리트들이 정신적으로 기댄 언덕이 북한의 날조된 사상이었으며, 분단에서 비롯된 민족적 감정에 치우쳐 멀쩡한 청년들이 종교적으로 그 사상에 빠졌다는 점에서 불행한 시대였다. 그런데 민족해방파의 사상과 이론은 뿌리가 깊어 야당 국회의원들의 무의식 세계를 지배하면서 한국 사회의 앞날을 가로막고 있다.

80년대의 지식인·학생에게는 군사독재 타도를 위해 사상 무장을 통한 조직화와 세력화가 시급했다. 하지만 그 시절 사상 무장을 시켜 줄 선배들이 없었다. 해방 후 여운형의 중도파 사회주의, 박헌영의 남로당, 조봉암의 진보당까지 있었지만, 전부 암살당하고 숙청당하고 사형당했다. 80년대 한반도 남쪽의 좌파는 궤멸 상태였다.

386들이 발견한 것은 북한 주체사상이었다. 항일유격대 출신의 김일성이 통치하는 나라, 친일파와 반동 지주를 몰아내고 세운 민중의 나라, 미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고도 살아남은 나라, 김일성 주체사상은 군사독재에 맞서는 386들에게는 매력적인 사상이었다. 북한 방송을 듣고 베낀 강철 김영환의 주체사상을 수용한 민족해방파가 운동권 다수파가 되면서부터 변혁 운동은 사유의 능력과 토론 문화를 잃어버렸다.

민족해방파들은 '구국의 소리' 방송을 필사한 후부터 사상, 철학, 투쟁 노선 등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방송에서 싸우라는 대로 싸우면 그만이었다. 많은 인원을 동원해 방송의 명령을 가장 치열하게 실천한 대학이 운동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1990년대 학생운동은 한총련을 결성하면서 더 주체사상에 몰두했다. 세상이 바뀌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직적 조직 문화 속에서 통일투쟁만을 전개함으로써 학생과 시민에게 외면받았다.

민족해방파들은 북한을 사상의 조국으로 믿으며, 반미자주화와 통일을 외쳤다. 그들은 북한의 수령 모델을 빌려와 지역과 학교마다 자기들만의 대장을 모시고, 통일전선전술론에 기반을 둬 보수 야당에 대거 진출하고, 민주노동당을 접수했으며, 풀뿌리 조직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시민 사회에 세력을 확장했고, 선동술로 여론을 조작하여 한국 사회를 혼란과 분열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노사모라는 정치 팬덤을 앞세워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으나 아마추어였기에 실패했다. 노무현 사후 복수의 화신이 된 그들은 촛불을 이용해 무능한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세우고, 386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부귀를 차지했다. 음모론, 가짜뉴스 등의 저급한 정치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 시대착오적인 반일, 민주 대 반민주, 가짜 진보와 포퓰리즘만을 내세우는 그들의 기득권 통치는 노무현의 비극에서 출발해 문재인의 희극으로 막을 내렸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