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미술사 개척한 고유섭, 그의 혼 쓰는 일은 내 의무”

인천의 위대한 정신적 인물
삶·신념·습관·인간관계 등
자료 1만4000여개 모아 집필
우현 연구로 인천 혼 품격 느껴
▲ 고유섭 평전을 쓴 이원규 작가가 인천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고유섭 평전을 쓴 이원규 작가가 인천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섬나라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던 1905년 역사의 질풍노도가 몰아치던 개항도시 인천에서 태어나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조국의 미술사를 개척하기 위해 외로운 길을 걸었던 우현 고유섭은 조국 광복 1년을 앞두고 그렇게 떠났다.”

1944년 6월 고유섭 선생이 39세라는 파릇한 생을 마감할 당시를 이원규 작가는 이렇게 썼다.

▲ 고유섭 평전이원규 지음,  한길사568쪽, 2만8000원
▲ 고유섭 평전이원규 지음, 한길사568쪽, 2만8000원

'짓밟힌 민족자존을 되찾기 위해 민족미술사를 홀로 개척해나간 선구자', 인천이 낳은 비범한 석학인 우현 <고유섭 평전>을 출간한 이 작가에게서 집필 연유와 과정을 들었다.

그를 만나 보니 이 책은 평범한 전기가 아니었다. 이 작가의 컴퓨터엔 고유섭에 관해 모은 자료 개수가 1만4000개였다. 지금의 애관극장 근처 기와집을 매입했을 당시 등기부 등본까지 확보하고 있었다. 고유섭의 미술사적 업적뿐 아니라 그의 삶, 평생의 신념, 일상적 습관과 인간적인 면모, 주위 인간관계까지 샅샅이 체화한 결과물이었다.

“내 고장의 가장 위대한 정신적 인물임을 알지만 미술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선뜻 전기를 써볼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를 약식으로 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깨달았죠. '가장 고귀한 인천의 혼을 쓰는 일이 나의 의무구나' 하고 말이죠.”

고유섭에 관해 읽고 관련 자료를 모으고 답사하는데 1년을 보냈다. 다시 1년을 집필에 매달렸다. 이 작가의 모교인 동국대와 인천시립박물관, 인천문화재단 등에서 도움을 받았다.

고유섭의 의미에 비해 그의 연구서와 논문이 생각만큼 많지 않은 터에 이 책은 진작에 나왔어야 할 성서와도 같은 존재다.

서화는 물론 도자기, 불상, 불탑까지 한국의 미술을 학술적 체계로 정리한 그가 이렇게 빛나는 발걸음을 하게 된 역사를 이 평전을 통해 한눈에 알 수 있고 요절했지만 100년을 산 학자보다 컸던 그의 열정과 생애를 소설적 문장력으로 복원했다.

“우현又玄은 검고 또 검다는 뜻이에요. 인천이 가진 물질에 비해 정신이 빈곤하다고들 하는데 나는 우현을 연구하면서 대한민국의 얼을, 인천 혼의 품격을 다시 봤습니다. 그것으로 다시 무장하고 되새길 때 우리는 달라질 수 있을 테죠.”

/글·사진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