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임식 전 LH 공동주택 감사위원
▲ 최임식 전 LH 공동주택 감사위원

구랍. 지난해의 섣달(12월)을 의미한다. 구랍 31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정년을 맞아 퇴직했다. 34년 3개월이라는 긴 세월이 한순간에 휙 지나갔다. 꿈속에서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잠시 '남가지몽'을 꾼 느낌이다.

격변하는 시대에 공공기관에서 한 세대를 넘겨 정년을 맞은 것이 상찬의 대상인지는 알 수 없다. 특히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2019년 코로나19 사태 등 우리 경제의 근간이 흔들린 위기의 시대에 개인의 '밥그릇'을 굳건히 지킨 결과가 오욕이 아닌지 깊이 되돌아보기도 한다. 그 영욕의 세월을 마감하고 LH를 다시 생각해 본다.

LH는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통합해 2009년 10월1일 출발한 공공기관이다. 통합 목적은 기능 중복을 해소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 하나로 2008년 10월13일 양 기관 통합이 결정됐고 이후 통합법안이 상정됐다. 그러나 학계와 야당 및 지방자치단체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답보 상태에 있었으나 2009년 4월30일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의 갑작스러운 본회의 직권상정으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었다.

이후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 정책은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통합 등 실질적 방안은 무산되고 기능 축소·인력 감축이라는 전가의 보도만 휘두르다 마감됐다.

2009년 10월7일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 출범식에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국내 굴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모습을 보인 것은 통합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당시 정부는 통합 공사의 예정된 재무 위기 타개책 하나로 공사의 임대운영업무 단계적 폐지 계획을 밝혔다.

LH는 통합 이후 10년사를 편찬하고 있다. 그러나 통합 공사 출범과 그 이후 공사의 궤적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대안 제시는 부족했다. 그런 와중에 2021년 부동산 투기 사태가 터졌다.

부동산 투기 사태는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2021년 3월2일 LH 직원이 자체 사업지구인 광명·시흥 신도시에 100억 원대 투기성 토지 매입을 자행했다고 주장하면서 제기됐다. 정부는 합동조사단을 꾸리고 국무총리는 LH에 해체 수준의 메스를 가하겠다고 했다.

부동산투기전담센터도 설치했다. 사태 발발 직후인 4월7일 치러진 재보궐선거(서울시장, 부산시장 등 선거)에서 여당의 참패를 가져왔고 공직자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의 촉매제가 되었다. 그러나 LH와 국토교통부 직원에 대한 저인망식 수사·조사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초라했다. 현재까지 전국 사업지구에서 투기로 유죄판결 받은 직원은 손에 꼽을 정도다. 오히려 그해 10월5일 국민의힘 정찬민 의원이 투기 관련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고 2023년 8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었다.

LH는 이 사태의 영향으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3년 연속 D등급을 받았다. D등급은 상여금 0%를 의미한다. 직원들은 '한국또D공사'라 하고, '또D'의 한글 완성 단어로 극단의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영평가 개선을 위한 내부 파이팅은 매번 배반당했다. 2023년의 무량판 아파트 사태는 가냘픈 희망마저 무너뜨렸다. 폭풍우 속에 우산마저 뺏긴 후배들을 뒤로하고 퇴직하는 심정은 형언할 수 없는 참척(慘慽)의 고통이다.

직원들은 올해도 새로운 각오로 힘차게 뛰고 있다. 언젠가는 헌신과 진실이 국민의 가슴을 울릴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올해 대규모로 악화할 부동산 경기에 공공기관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3기 신도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부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현장을 인수하는 배드뱅크 역할을 준비하고 있다. LH는 올 한 해 최선을 다해 '경영평가 D' 탈출을 겨냥하고 있다. 그것은 건재한 후배들의 환송을 받고 퇴직한 필자의 소중한 희망이다.

/최임식 전 LH 공동주택 감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