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완섭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출범 준비부터 기틀 마련·실무 담당
'감당할만한 일을 제대로' 운영 철학
분과별 '발자취 기행' 등 정기 개최
“후손들에 큰 울림 되길 학수고대”

“우상을 타파하고 이성의 붓으로 진실을 밝히려 했던 리영희 선생의 고매한 뜻을 받들 전용공간이 마련돼 후손들에게 큰 울림이 되기를 학수고대합니다.”

고 리영희 선생의 '진실 정신'을 기리고 계승 발전시킬 목적으로 출범한 '리영희기념사업회'의 신완섭(64·사진) 운영위원장을 만났다.

한반도와 국제관계의 진실을 밝히고 알리는 데 평생을 바친 리영희(1929~2010) 전 한양대 교수. 선생은 1970~1980년대 젊은이들에게는 '사상의 은사'로, 군사정권하에서는 '의식화의 원흉'으로 평가받아온 인물이다. 그러나 2019년부터 그는 군포지역에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그의 삶이 군포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1994년 군포시로 이주해 2010년 타계하기까지 16년간을 보내며 집필 활동을 했다. 2004년에는 평생 모은 장서를 군포시에 기증한 일도 있다. 신도시 입주 초기에 소각장 건설 문제와 관련해 시민단체에 자문역을 하는 등 지역 현안을 함께 고민해 왔다.

이후 2020년 서거 10주기를 앞두고 군포시와 시민사회단체까지 나서 선생의 삶과 철학을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2022년 3월에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리영희기념사업회'를 발족했다. '리영희 기념관' 건립을 목표로, 국민적인 기념사업회를 꿈꾼다. 기념사업회는 당초 70여 명의 초대발기인으로 시작했다. 현재 정금채 대표가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출범 준비 과정부터 기틀을 마련하고 실무를 맡은 신완섭 운영위원장과 학술분과장, 활동분과장, 총무분과장 등으로 임원진이 구성됐다.

신 운영위원장은 경남 진해 태생으로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제약 마케터 출신이다. 제약 회사와 대기업 등에서 20년가량 마케팅 기획업무에 종사했다. 현재는 무역 및 출판사업, 식품연구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기념사업회와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지난 1993년 산본신도시에 분양 입주했던 군포시민이면서 2016년에 등단한 시인이다. 이후 군포와 관련 있는 명사들을 추려 '군포사람들 55인전' 시화전을 세 차례 개최하면서 리영희 선생이 이웃에 거주하다 돌아가신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그는 마치 자신의 은사를 뵙는듯한 기쁨도 잠시 상실감에 빠졌다. “마침 2020년에는 선생의 10주기였음에도 지자체나 시민단체, 여타 어느 곳에서도 선생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준비하지 않아 혼자 힘으로라도 조촐한 추모 행사를 치렀다”고 회고했다. 이후 군포시로부터 매년 추모행사비를 후원받아 내리 3년째 시민참여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신 운영위원장은 “결국 2021년 상반기에는 뜻을 같이했던 사람들과 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를 가동하고 2022년 초에서야 마침내 정식 발족의 결실을 거뒀다”며 동참 이유를 털어놨다.

그는 “시민활동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 아니라서 항상 배우는 자세로 겸손하게 직책을 수행하고자 한다”며 초대 운영위원장으로서 운영철학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한 치 머뭇거리지 않으면서도 부끄러움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소신을 피력했다.

신 운영위원장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본 회는 인물 리영희를 기념하고자 하는 사업회이기 때문에 선생의 '진실 정신'을 배양하는 활동에만 충실할 따름”이라고 강조했다.

운영방식은 '감당할 만한 일을 제대로 수행하자'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감당할 일은 철저히 '분과 중심'으로 하되, 감당 못 할 경우에만 운영위에서 중지를 모으자는 입장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학술분과에서 '리영희읽기' 모임을 매달 1회 열고 있으며, 활동분과에서는 반기 1회 '리영희발자취 기행'을 개최하고 있다.

그는 특히 “향후 비영리민간단체 지정을 위한 신청작업에 본격 착수할 예정이며, 비영리민간단체로 지정될 경우 본 회는 정당하게 지자체에 지원금을 요청, 목적사업의 질과 양을 늘림으로써 바른 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에 매진할 방침”이라고 운영방향을 설정했다.

/군포=글·사진 전남식 기자 nscho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