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원 경기본사 사회부장.<br>
▲ 김기원 경기본사 정경부장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치부는 바빠진다. 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정치인들이 직접 또는 다른 사람을 통해 연락이 와 만남이 만들어진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3달 전에 한 정당 지역위원장 A씨와 만남 자리였다. 그는 그동안 있었던 고단한 삶을 토로했다. 봄 가을에는 매주 2회 이상 산악회 따라 산을 올랐고, 김장철에는 근 한 달 동안 매일 김장김치와 수육, 막걸리를 먹었단다. 평일에는 각종 모임과 주민의 애경사 찾아 밤낮으로 돌아다녔고 아침저녁으로 학교 교통안내 봉사 등등. 하루를 25시로 산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열심히 했으니 좋은 성과가 있겠지 않겠냐고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하고 헤어졌다.

그를 최근 다시 만났는데 긴 한숨을 내셨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며 중앙당에서 전략공천 얘기가 나오면서 정치 인생뿐만 아니라 삶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격분을 토해냈다.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난감했다. 그냥 잘 되겠지요. 말만 고장 난 카세트마냥 반복하다가 헤어졌다. 선거 일이 다가올수록 정당별로 전략공천과 다선 의원의 험지 출마론이 나오는데 A씨가 그 희생양이 될 모양이었다.

그날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전략공천으로 지역에 내려온 정치인들이 과연 지역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출마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지역 현안을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변은 차차 지역주민들과 만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한다. 참 좋은 수사어다.

이런 정치인들의 유사한 점은 위장전입 아닌 위장전입을 한다는 점이다. 지역구에서는 전세 또는 월세로 살고 본 집은 서울에 있다. 낙선하면 두말하지 않고 지역을 떠난다.

이보다 골치 아픈 것은 현직 시·도의원이다. 수년 동안 고락을 같이해온 당협위원장을 하루아침에 젖히고 안면을 튼 지 얼마 안 되는 사람과 지역을 돌아다녀야 하는 처지가 자신들이 보기에도 볼썽사납다. 한 시의원은 전략 공천자로 확정되자마자 점령군처럼 지역사무실 입성해서 입당원서 가져와라, 지역 일정을 빠짐없이 챙겨와라 등등 강압적 지시에 속이 뒤틀려서 힘들었다고 한다.

시·도의원은 당선돼도 문제고 안돼도 문제다. 당선되면 2년 후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측근에게 공천권을 행사할 것이고, 낙선하면 당 공헌도 따져 문책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정치 공학적으로 눈치를 봐야 할 계절이 온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 현안과 주민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이 유권자를 대신해 과연 지역 공동의 선을 실현할 수 있을까. 아니면 전략공천을 준 사람에게 줄 서기로 임기를 마치지 않을까. 나만의 생각인지 몰라도 둘 중 무게 중심은 누가 봐도 확연해 보인다.

이 쯤되면 전략 공천 자체가 대의 민주주의제도를 흔들고 있다. 이런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각 정당은 선거철마다 너무 태연하게 자행한다. 단어도 현란하다 상대 후보의 자객 공천, 정권 실세의 지역 발전론, 인물론 등등.

그러고 보니 전략공천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정치신인의 등용문이 될 수 있고 정당 입장에선 선거판을 흔드는 바람잡이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장점 있나 고민해봤는데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각 정당은 전략공천을 자제하고 유권자와 그 정당원에게 자신의 대표를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수년 동안 지역에 헌신해온 지역 일꾼을 일방적으로 배제해선 안 된다고 본다. 그들에게 경선에 참여할 기회를 줘야 한다. 그 많은 희생을 치르고 지켜온 대의 민주주의를 선거 셈법으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

/김기원 경기본사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