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 단편 '풀(pool) 사이드'가 있다. 이 단편의 주인공은 35세의 봄을 자기 인생의 반환점으로 삼기로 결심한다. 일본 남성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너무 이르지만 주인공은 '반환점을 잃지 않기 위해', 그래서 자신이 서 있는 정확한 위치를 알기 위해 그렇게 생각하기로 결심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마라토너이며, 수영 애호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주인공의 말을 빌려 “400m 수영 경기에서 반환점이 없다면 구원이 없는 암흑이 될 것”이며, “반환점이 있기 때문에 힘든 레이스를 그런대로 견디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길고 지구력이 필요하다는 면에서 마라톤이나 장거리 수영 경기는 곧잘 인생에 비유된다. 숙련된 선수들은 긴 경주를 견디기 위해 거리를 나누어 생각하며 달린다. 우선 반을 달리는 것에 집중하고, 다음에는 남은 반을 달리는 것에 집중하고, 다시 남은 반을 생각한다. 거리를 나누면 의지도 나누어지고 부담도 나누어진다. 레이스가 견딜 만해질 뿐 아니라 그 과정도 풍부해진다.

삶을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요즘 삶은 42.2㎞ 정도가 아니라 거의 50㎞로 연장된 마라톤 일 것이다. 기대 수명이 80대를 돌파하고 90세를 내다보기 때문이다. 런던경영대학 린다 그래튼 교수는 길어진 수명 때문에 '교육-직업-은퇴'라는 삶의 패턴은 종식되고, 다단계의 삶이 자리 잡을 것이라 전망한다.

은퇴를 기다리지 않고 이직하거나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다단계의 삶이란 그 정도를 넘어, 몸과 마음의 변화에 맞춰 직업의 종류와 성격을 몇 번 교체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40대에는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50대에는 교육이나 연결에 관계된 일로, 60대에는 상담, 조력과 관련된 일로 직업을 교체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회가 되면 결혼도 평생 반려자를 한두 번 교체하는 '연속일부일처제(serial monogamy)'가 일상이 될 것이라 내다본다. 여러모로 인생이 마라톤이 아니라 철인삼종경기처럼 된 것이다.

삶에는 지식, 인맥과 같은 '생산자산', 돈과 집 같은 '유형자산'이 필요하다. 그런데 수명이 늘어나면서 건강과 인간관계 같은 '활력자산'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노인의학 전문가들이 '기동성' 즉, '모빌리티(mobility)'를 강조하는 것이 같은 맥락이다. 오래 살게 되었으니 노후에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할 정도로 미리 뼈, 관절 관리를 하고 열심히 근육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래튼 교수는 중요한 자산을 하나 더 소개한다. '변형자산'이라는 것이다. 나이와 관계없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태도를 말한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지위, 경력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인 '유동성'과 같은 의미이다. 우연히 유동성의 원어도 '모빌리티'이다. 그러니까 삶의 후반에 두 모빌리티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몸의 모빌리티인 기동성과 마음의 모빌리티인 유동성이다.

해가 바뀌면 사람들은 차분히 지난날을 정리한다. 그러나 백미러를 보며 운전하기에는 삶이 너무 길고 역동적인 길이 되었다. 변화를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언제든 새 출발을 두려워 않는 개방적인 마음 없이는 긴 삶을 견뎌내기 어렵다. 새해맞이는 마라토너처럼 거리를 반으로 나누고 에너지 비축 상태와 지금 위치를 재어 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당신이 30대든 70대든 상관없다. '풀 사이드'의 주인공처럼 2024년 갑진년이 시작하는 오늘을 반환점으로 정해 보는 것이다.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