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2024년은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가 태어난 지 200주년 되는 해다. 수운은 1824년 '경주 최부잣집' 7대손이자, 영남의 이름난 유학자 근암 최옥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수운은 서출(庶出)이었다. 학문을 배웠어도, 벼슬길로 나갈 수 없었다. 수운은 18세 무렵부터 전국을 떠돌며 글방 훈장도 하고, 장사를 하기도 했다. 이른바 '평민지식인'의 굴곡진 삶이었다. '평민지식인'은 프랑스혁명 시기의 계몽주의자처럼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 조선 후기의 '벼슬길 막힌 서생들'을 일컫는다. (백승종, <동학에서 미래를 배운다>)

수운이 전국을 돌던 시절은 제1차 아편전쟁(1840~1842)으로 중화주의 세계관이 근본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백성의 삶은 세도정치의 폐단이 쌓여 갈수록 피폐해져 갔다. 수운은 방랑의 길 위에서 개벽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운은 1860년 어느 날 '하늘의 소리'를 직접 듣고, 1년을 더 수행한 뒤 1861년부터 동학의 포교에 나섰다. 동학은 유교·불교·도교의 핵심 알맹이를 종합하고, 서학(천주교)의 가르침까지 융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학은 농민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이를 두려워한 조정은 수운을 체포해 1864년 대구감영 뜰에서 사형을 집행했다.

후광 김대중은 1924년 전남 하의도에서 태어났다. 해방되었을 때 김대중은 목포상고를 졸업하고 사업을 준비하던 청년이었다. 전쟁의 와중에 대한청년단 임원이었다 하여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 김대중은 부산에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이승만 정권 내내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번번이 낙선했고,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당선증을 받자마자 5·16쿠데타로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다. 오는 1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길 위에 김대중'은 그가 군부와 신군부의 맞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여정을 그린다. 다큐를 보면 그가 원칙의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100년의 시차가 있지만, 수운과 후광은 평생 '모두 함께 사는 삶'을 추구했다. 수운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은 해월 최시형을 통해 양천주(養天主)를 거쳐 인내천(人乃天)과 세상 만물을 존중하라(경물·敬物)는 가르침으로 발전했다. 후광은 평화와 민주주의야말로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의 열쇠라고 믿었다. 4월 총선과 11월 미국 대선이 치러지고, 국제정세와 경제는 불안정하게 출발하는 2024년 새해 벽두, '꿈의 계보학'을 다시 더듬어 본다.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