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7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놓인 고 이선균씨 영정사진. /연합뉴스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았던 배우 이선균(48)씨의 극단적 선택을 계기로 ‘피의사실공표죄’를 실효성 있게 적용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는 30일 논평을 내고 “고 이선균 배우가 경찰 수사를 받던 중 유명을 달리한 일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고인의 사망 하루 전에는 명백히 ‘피의사실’에 해당하는 내용이 여과 없이 언론에 보도됐고, 사건과 무관한 고인의 통화 내용 등 사생활까지 공개됐다”고 비난했다.

이어 “(대안으로는) 피의사실이 공표된 경우 당사자가 법원에 피의사실 삭제와 공표 금지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과 위법하게 공표된 증거에 대해 사용을 금지하는 방안 등이 이미 학계와 국회에서 제안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법센터는 “특히 수사 과정에서 사건 관계인 명예와 사생활이 침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무죄 추정 원칙 및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제도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형법 제126조는 검경 등 수사기관 종사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한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5년 이하 자격 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피의사실 공표 사건 조사∙심의 결과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검찰에 피의사실공표죄로 접수된 사건 347건 중 기소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정치권에서도 이씨의 마약 사건 관련 보도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은 지난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KBS는 범죄 사실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도 없는 내용을 방송해서 고인이 생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의 모멸감을 느끼게 했던 것”이라며 “분명히 국가가 문제를 제기하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도 “언론이 이씨의 사생활을 무차별하게 폭로했다는 것이 밝혀지고, 마약 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사적 대화가 나왔는데 이게 뉴스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KBS 측은 이씨의 극단적 선택에 KBS 보도가 원인이 됐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와 유흥업소 실장의 관계와 진술의 신빙성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만 선별해 통화 내용을 공개했고, 이 과정에서 자문 변호사에게 여러 차례 법률 검토를 요청하는 등 보도 전 신중한 검토 과정을 거쳤다고 KBS 측은 설명했다.

▲ KBS의 이선균씨 사적 통화 내용 공개 이후 경찰이 낸 보도 관련 설명자료.
▲ KBS의 이선균씨 사적 통화 내용 공개 이후 경찰이 낸 보도 관련 설명자료.

한편 KBS가 이씨와 유흥업소 실장의 사적 통화 내용을 공개한 것을 두고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보도 당시 경찰이 KBS 측에 관련 정보를 제공한 인물로 ‘유흥업소 실장 측 변호사’를 지목한 것으로 확인됐다.

KBS는 지난달 24일 [단독] 유흥업소 실장 “5차례 투약” 진술…이선균 측 “허위 주장”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며 이씨와 유흥업소 실장 김모(29∙여)씨의 통화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이후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는 같은 달 27일 해당 보도 관련 설명자료를 내고 “일부 언론에서 경찰이 이선균씨에 대한 피의사실을 공표한 것처럼 보도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흥업소 실장 변호인이 ‘피의자 신문조서’를 정보공개 신청해서 받은 서류 등을 특정 언론사에 제공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또 “수사상 내용이 유출되는 행위는 피의사실 공표와 개인의 명예훼손에 해당될 수 있다”며 보도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씨는 지난 27일 오전 10시30분쯤 서울 종로구 한 공원 인근에 주차된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발인식은 전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그는 올 10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대마∙향정 혐의로 형사 입건돼 2개월가량 경찰 수사를 받았다.

/박범준 기자 parkbj2@incheonilbo.com